예외 없었던 ‘보수 텃밭’ 개혁 공천, 명분·인물 따라 결과는 ‘극과 극’ [총선 앞으로 1년]
신한국당 15대 공천 ‘모범 사례’
경쟁력 있는 인물 수혈이 관건
계파 챙기기 우선 땐 파동 불러
국민의힘 계열 보수정당 역사에서 ‘개혁 공천’의 모범 사례로 회자되는 선거는 15대 총선이다. YS(김영삼 전 대통령) 집권 3년 차이던 1996년 당시 신한국당은 민중당 출신의 이재오, 김문수, 이우재 등 재야 운동권 인사와 ‘모래시계 검사’로 이름을 날린 홍준표 등 신진 인사를 대거 영입해 패색이 짙었던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다. 부산에서도 홍인길, 한이헌, 김기재 등 고위 관료 출신과 정의화, 권철현, 김무성 등 젊은 피를 적절히 조화시키는 공천으로 전승을 거뒀다. YS계가 대거 원내에 진입했지만 전문가 그룹을 중용하고 이념적으로도 다양성을 확보해 ‘물갈이 공천’의 정당성을 확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 여당 계열에서 PK(부산·울산·경남)을 비롯한 영남권의 역대 총선 물갈이 공천은 변수가 아닌 ‘상수’로 인식된다. 보수 텃밭으로 받아들여져 출마 희망자가 몰리면서 ‘인재 순환’이 빠르고, 일정 수준의 교체율이 나오지 않으면 오히려 ‘기득권 공천’으로 인식돼 전체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매번 절반 가까운 현역들이 공천에서 탈락했지만, 그 효과는 그야말로 천양지차였다.
16대 총선에서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영남 정치 거물인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 등을 공천에서 배제해 ‘학살’이라는 말까지 나왔지만 원희룡, 오세훈 등 새 인물 수혈에 적극 나서 제1당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반면 친이(친이명박)계가 공천권을 휘두른 18대 총선에서는 홍사덕, 김무성, 서청원 등 친박 중진은 물론 친박계 소장 그룹까지 대거 공천에서 배제해 ‘학살’ 논란이 불거졌다. 특히 박근혜 전 대표가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며 친박계의 무소속 ‘생환’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면서 친박 무소속 바람이 불었다. 영남에서는 ‘친박’ 수식어만 붙으면 동정표가 쏠린 반면 이재오, 이방오, 정종복 등 공천에 관여한 친이계 인사는 줄줄이 낙선했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로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꾼 19대 총선에서도 영남권의 대규모 물갈이 공천이 단행됐지만, ‘하위 25% 컷오프’ 규정이라는 시스템 공천을 했고, 여기에 친박·친이계 인사들이 골고루 포함돼 ‘공천 파동’으로 확산되진 않았다.
2016년 20대 총선은 다시 ‘학살’로 되돌아갔다. 친박계가 당 주도권을 쥐자 비박계 의원 ‘공천 살생부’가 떠돌았다. ‘진박’ 논란이 불거지면서 급기야 김무성 대표가 공천장 날인을 거부하는 ‘옥새 파동’까지 불거졌다. 집권당 내부의 극심한 분열은 결국 부산에서 사상 최초로 민주당이 5석을 얻는 보수정당 최대 패배로 이어졌다. 김 대표의 ‘상향식 공천’ 원칙 고수로 새누리당 현역 의원 교체율이 24%로 떨어진 것도 패배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21대 총선에서 김형오 위원장을 필두로 한 공천관리위원회가 영남권에서 역대 최고 수준의 물갈이 공천을 단행했으나 경쟁력 있는 인물 수혈에 실패하면서 민주당에 크게 패했다. PK 의석수는 다소 높아졌지만 “존재감 있는 현역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박한 평가가 나온다. 부산 국민의힘 관계자는 “명분 없이 계파만 챙긴다는 이미지가 굳어질 경우 공천 파동이 불거졌다”면서 “새 인물이 지역 발전을 견인하고, 중앙에서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경쟁력이 있어야 지역 민심이 ‘물갈이’를 ‘개혁’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