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지역을 외면한 정치, 이들에게 경고한 국민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국민의힘 재보궐선거 충격적 패배
지역 정치에 공들이지 않은 대가
새 지도부 메시지도 중앙 이슈 일색
소멸 위기 지역 주민들 생존 몸부림
민심 돌아서면 텃밭도 안심 못 해
지역 문제 해결에 힘 모아 나가야
4·5 재보궐 선거가 참패로 끝나면서 국민의힘은 큰 충격에 빠진 분위기다. 특히 김기현 대표의 지역구가 있는 울산에서의 패배는 그 충격을 배가했다. 전통적으로 보수세가 강하다고 여겨지는 지역에서 교육감 선거와 기초의원 선거(울산 남구 나) 모두 진보 진영에 내어 주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청주에서는 이겼다”며 애써 위안 삼고 있지만 벌써 당내에서는 총선 PK 위기설이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보면 국민의힘이 선거 패배로 충격에 빠진 지금 상황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기대란 본디 들인 공에 비례하는 법이다. 노력 없는 기대는 요행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선거가 치러진 지역들을 위해 그동안 국민의힘이 어떤 노력을 기울였나?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당연히 이겼어야 할 선거에서 졌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건 마치 로또에 당첨되지 않았다고 절망에 빠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친김에 국민의힘 새 지도부의 메시지를 찾아보았다. 3·8 전당대회 이후부터 4·5 재보궐선거까지, 최근 한 달 동안 열린 최고위원회의와 원내대책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을 모두 살폈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지도부의 발언은 대부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비리 의혹이나 북한 미사일 도발, 한·일 정상회담이나 근로시간제도 개편 등 현재 쟁점이 되는 이슈들에 국한되어 있었다. 지역 현안에 대한 언급은 찾기 어려웠다. 부산엑스포도 실사단 방문에 따른 형식적 언급만 있었다. 지역이 직면한 문제를 주요 화두로 던진 이는 불법체류자 단속 강화에 따른 농촌 인력난 문제를 다룬 김선교 원내부대표(3월 10일 원내대책회의)나 남부 지역 가뭄 문제를 다룬 임이자 의원(3월 31일 원내대책회의) 정도였다. 심지어 3월 23일에는 전북 전주에서 현장 최고위가 개최되었는데, 이곳에서마저 “이재명 때문에 김대중 정신마저 망가졌다”(태영호 의원)거나 “선거는 전쟁”(조배숙 전북도당 상임고문)이라며 정쟁을 일삼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다.
선거가 그 시기 분위기와 판세에 크게 좌우되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지역이 끼치는 영향도 크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여러 악조건을 극복하고 승리를 거머쥐는 의원들이 있다. 부산 사하을의 조경태 의원(국민의힘, 5선)이 대표적이다. 그는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공천을 받고 당선된 이래 세 번을 민주당계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었다. 특히 민주당이 81석밖에 못 얻은 제18대 총선에서도 그는 부산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조 의원이 토목공학이라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다대포 지하철 연장 사업을 이뤄 내고 지역 기반을 탄탄히 했던 건 지금도 국회 보좌진들 사이에서 무용담처럼 내려오고 있다. 전남 순천에서는 ‘호남 예산 폭탄’을 내걸고 두 번이나 당선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사례가 있다. 험지에서, 그것도 자당이 패배한 선거에서 이들이 당선될 수 있었던 건 지역민들의 요구를 정확히 알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힘쓴 덕분이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는 지역에 맥도날드가 없어서 빅맥 하나 먹으려면 구미까지 원정 가야 하는 안동 청년들의 사연이 화제가 되었다. 강원도의 한 대학은 올해 200명이 넘는 신입생 중 한국인이 단 한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몇몇 시군들은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한때 혐오시설로 여겨졌던 교도소를 유치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하고 있다. 수도권을 제외한 모든 지역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상권 붕괴로 신음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정치인들의 모든 관심은 우리의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한 상대방의 말실수, 비리 의혹, 태도 논란 등에 쏠려 있는 듯 보인다. 당 지도부가 이런 목소리를 외면한 채 정쟁만 일삼고 있는데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나. 그런 점에서 이번 재보궐선거 결과는 정치권에 보내는 국민의 경고와도 같다. 더 이상 상대방 트집 잡는 정치만 할 게 아니라, 지역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정치를 하라고 말이다.
어느덧 기억에서 멀어진 2016년 총선을 다시 떠올려 보자. 당시 호남에서 안철수 의원을 중심으로 한 신생정당 국민의당이 의석을 싹쓸이하는 이변이 벌어졌다. 호남 유권자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민주당이 아닌 국민의당을 택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 복잡한 사정도 있었지만, 호남에서 누적되어 온 실망과 불만을 민주당이 해소하지 못했던 게 크게 작용했다. 당시의 결과는 설령 우세 지역이라 할지라도 민심은 언제든 냉정하게 돌아설 수 있다는 걸 보여 주었다. 만일 국민의힘이 이번 선거의 교훈을 되새기지 않는다면, 민주당이 남 일이라고 안이하게 여기면 내년 총선에서 유권자들은 켜켜이 쌓인 분노를 표출하게 될 것이다. 국민은 분명히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