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연극 전용 극장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 초의 일이다. 강단 있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다는 희극 배우 신불출이 일본인이 운영하는 극장의 무대에 올랐다. 그런데 공연 도중 그는 갑자기 장탄식을 했다. “아, 어이하여 우리 조선 민족은 극장 하나 건립할 힘도 없더란 말인가!”
놀란 극장주는 그를 무대에서 끌어내려 극장 밖으로 내쫓았다. 신불출의 장탄식은 마땅한 공연장 하나 못 가졌던 조선 연극인들의 서글픔을 그대로 표출한 것이었다. 그때 국내 극장의 소유주는 대부분이 일본인이었고, 그나마 영화 위주로 운영돼 연극을 올릴 수 있는 극장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신불출의 염원이 통했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조선인에 의해, 그것도 연극만을 위한 극장이 서울에 나타났다. 1935년 건립된 동양극장이었다. 당대의 무용가이자 배우였던 배구자의 남편 홍순언이 지은 동양극장은 600석이 넘는 규모에 회전무대까지 갖춘, 당시로선 최신식 극장이었다. 비록 개관 3년 만에 홍순언이 사망하고 주인이 바뀌면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그래도 동양극장은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이었다.
지난 7일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부산연극제 개막식에서 주요 화제는 연극 전용 극장이었다고 한다. 부산에 연극 전용 극장이 없으니 어떻게 해서든 만들어 보자는 목소리가 높았는데, 축사에 나선 부산시 관계자는 연극 전용 극장 탄생에 시 차원에서 힘을 보태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연극은 기본적으로 대면 예술이라 연기하는 배우와 관객의 밀착도를 중시한다. 객석과 무대 사이 간격이 다른 장르보다 훨씬 좁아야 하는 이유다. 다양한 연출을 위해 무대 등 극장 내부 변용도 용이해야 한다. 그래서 서울은 말할 것도 없고 가까운 울산과 대구도 다수의 연극 전용 극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런데 41회째 연극 축제를 치르고 있는 부산에는 단 한 곳도 없다.
부산에서도 연극 전용 극장을 만들겠다는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6년 강서구가 부산 최초의 연극 전용 극장을 세운다는 계획을 세웠다. 문화계 전문가들로 자문회의까지 구성하는 등 야심 차게 추진했다. 그러나 주민의 호응을 끌어내지 못했고 구의회도 반대해 결국 실패로 끝났다. 90년 전 신불출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부산 연극인들은 마음 편하게 공연할 수 있는 전용 극장 하나 마련해 달라고 호소한다. 몹시도 안타깝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