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60년 철강 한길 매진한 철강맨의 자서전
철에서 삶을 본다/오완수
‘우리 공장은 1천 도가 넘은 열기와 요란한 쇳소리로 가득하다. 그 안에서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된 고철이 가공되어 매끈한 철근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과정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 속에서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와 기업이 끊임없이 생명을 얻어가는 원리를 깨닫곤 한다.’
대한제강 고 오완수 회장의 자서전 <철에서 삶을 본다>의 서두에 나오는 내용이다. 책에는 대한제강을 근 60년 동안 이끈 ‘따뜻한 철강맨’ 오완수 회장이 2012년까지 집필한 글들이 실렸다. 이듬해 봄에 출간하려 했으나 평생 공장만 보고 살아온 삶을 책으로 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오 회장의 뜻에 따라 타계 1주기에 맞추어 세상에 나왔다. 1939년 경상북도 의성에서 출생한 오 회장은 1965년 대한상사에 입사한 후, 1991년 대한제강 회장으로 취임했다. 2022년 4월 타계할 때까지 60년 가까이를 줄곧 ‘철강’, 오직 한길로만 매진했다.
1945년 광복 직후 ‘도떼기시장’으로 불리던 부산 국제시장 내 한 칸 철물 노점상에서 시작해 2020년 국내 철근제조업계 3위에 오른 대한제강의 60년 역사가 펼쳐진다. 역사적 혼란기인 1940~50년대 부산의 전경과 우리나라 철강업의 시작을 ‘종교가 공장’이었던 철저한 현장주의자 ‘오반장’, 오 회장의 목소리로 현장감 있게 읽을 수 있다.
책은 크게 4부로 구성돼 있다. 1부 ‘고철, 붕정만리(鵬程萬里)’에는 국제시장 내 한 칸 철물 도매상을 거쳐, 대한제강의 전신인 대한상사를 설립한 오완수 회장의 부친 오우영 회장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오완수 회장은 신뢰로 어려운 순간들을 이겨나가는 아버지의 삶에서 기업인의 성실함을, 열 형제의 맏이로서 남다른 책임감을 배웠다고 회고한다.
2부 ‘제강, 정금백련(精金百鍊)’에는 부친인 오우영 회장의 별세로 서른다섯이란 나이에 가정과 회사를 모두 짊어진 오완수 회장이 신평공장을 준공한 이야기부터 2차 석유파동과 80년대 초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혼란 속에서 이어진 경기침체로 사채까지 써야 했던 참담함도 이야기한다. ‘사업을 하면서 정치권력의 힘을 빌려 쉬운 길을 가지 말아야 하고, 늘 현장에서 답을 얻어야 한다’는 두 가지 원칙으로 난관들을 헤쳐온 이야기가 담겨 있다.
3부 ‘압연, 갱상일루(更上一樓)’는 50년 동안 기업을 일군 선배 기업인이 후배들에게 전하는 지침서 같은 장이다.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에는 오너의 혜안과 냉정한 평가가 중요한데 이는 단시간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성실하고 치열하게 노력해야 쌓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좋은 시절일수록 더욱 자신을 돌아보고 나빠질 때를 준비할 줄 아는 겸허한 자세가 뒷받침될 때 위기가 갑자기 들이닥쳐도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경험에서 비롯한 생생한 조언들이 담겨 있다.
오 회장은 고열과 고압에 시달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구조물의 뼈대가 되고, 기둥이 되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전체를 지탱하는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철이라고 말한다. 쇠가 다른 어떤 것보다 강한 것은 그만큼 주어진 조건들을 인내하고, 자기 역할에 충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철에서 배운 인내와 집중으로 걸어온 오직 한길, ‘철강’에 대한 오 회장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4부 ‘순환, 안거낙업(安居樂業)’에는 형제들을 건사하고 처자식을 먹여 살리려는 일념으로 부친이 물려준 사업체를 운영하는 데 몰입했던 오 회장이 추구했던 삶의 중요한 덕목인 중용과 부족함을 조명한다. 오완수 지음/아템포/272쪽/1만 8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