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진의 여행 너머] 주(酒)님을 만나러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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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라이프부 차장

“막걸리인데 왜 스파클링 와인 맛이 나죠?” “전통주가 치즈와 어울린다고요?”

올 초, 전통주 양조장 탐방시리즈 ‘술도락 맛홀릭’을 시작했다. 취재차 부산·경남지역 술도가를 방문할 때마다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우리 술 하면 흔히 떠올리는 막걸리가 아니었다. ‘막걸리가 거기서 거기겠지’ 하는 생각은 첫 번째 방문에서 여지없이 깨졌다. 쌀·물·누룩, 똑같이 3가지 재료로 빚었는데 술맛은 양조장마다 천양지차. 재료의 비율, 발효 기간, 온습도 등 조건에 따라 음료수처럼 달달한 입문자용이 될 수도, 산미가 강한 술꾼들의 술이 되기도 한다니. 주(酒)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음식이 더해지면 주님은 더 큰 마법을 발휘한다. ‘마리아주(mariage)’, 즉 궁합이 맞는 먹거리와 함께하면 술도 음식도 매력이 배가된다. 통영의 신선한 굴이 천연탄산 가득한 ‘건축가가빚은막걸리’를 만나면, 입안에서 굴향이 폭발한다. 우유처럼 부드러운 ‘동래아들’ ‘감천막걸리’는 더 부드러운 잼·치즈와 하나처럼 어우러진다. 10점짜리 술과 음식이 만나 50점·100점이 되는 신비로운 경험이다.

알고 보면 막걸리부터 약주·청주, 증류주, 과실주, 와인까지 우리 술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 술마다 양조장의 전통과 지역 특색이 녹아 있으니 전 세계 이보다 개성이 살아 있는 술이 또 있을까. 게다가 음식과 짝을 이루면 조합이 훨씬 다양해지기에, 우리 술의 매력은 무한대라 할 만하다.

주님의 세계를 알게 되면서부터 여행 방식에 변화가 생겼다. 주변에 양조장이 있는지 살펴보고, 일정 중간 짬을 내 들러 보려고 노력한다. 입구에서부터 풍겨 오는 술익는 내음에 쌓인 여독이 스스르 녹는다. 술과 어울릴 맛집을 찾게 되니, 자연스레 식도락 여행으로 이어진다. 아예 양조장을 중심에 놓고 일정을 짜보기도 한다.

‘양조장 투어’는 일본·유럽 등 해외에선 익숙한 문화다. 우리나라도 10년 전부터 ‘찾아가는 양조장’ 사업을 통해 일반인의 전통주 체험 기회를 점차 확대하고 있다. 올해 새롭게 선정된 5곳을 포함해 전국적으로 모두 55곳의 ‘찾아가는 양조장’이 있다. 농식품부가 지역별로 까다롭게 선정한 우수 양조장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우리술 포털사이트 ‘더술닷컴’에 가면 상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술도락 맛홀릭 여행을 제대로 즐기려면 자가용보단 대중교통, 두 발이 알맞다. 음식과 곁들이는 술이어서 과음과는 거리가 멀다. 지구별에도 여행자에게도 건강한 여행이다. 다음 주엔 경남 함양으로 떠난다. ‘지리산 흑돼지’와의 마리아주를 찾아서.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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