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이 싫어서?… ‘적당한 일자리’ 없어서 떠나는 부산 MZ [MZ 편집국]
장려금으로는 청년 마음 못 잡아
지역·기업, 좋은 일자리 만들어야
‘킹차갓산직’ 열풍은 MZ세대 구직자가 단순히 ‘지방이 싫어서’ 지역을 등지는 것이 아님을 방증했다. 현대차는 합격자가 울산이나 충남 아산, 전북 전주 공장 가운데 한곳에서 근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럼에도 400명 모집에 18만 명이 넘는 응시생이 몰릴 정도로 젊은 구직자가 너나없이 취업에 뛰어들었다.
사실 현대차처럼 평균 연봉 1억 원이 넘는 글로벌 대기업일 필요도 없다. ‘좋은 일자리’가 아닌 ‘적당한 일자리’만 있어도 고향을 등지지 않겠다는 부산 젊은이는 도처에 즐비하다. 지난해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청년의 지역 이동 요인 중 압도적 1위는 일자리(42%)였다. 주거(17.6%), 가족(15.5%) 등과 비교해 2~3배가량 많았다.
서글픈 현실은 제2의 도시라고 자부하는 부산에도 적당한 일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매출액 기준 국내 100대 기업 안에 드는 부산 기업은 단 1곳도 없다. 1000대 기업으로 범위를 넓혀야 그나마 27개 업체가 들어가는, 그야말로 비참한 수준이다.
브랜드 디자이너 이지연(33·가명) 씨는 7년간 서울에서 회사생활을 하다 지난해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서울살이가 고달팠던 탓에 부산에서 직장을 구해 정착하려 했으나 ‘귀향’ 석 달 만에 이 씨는 다시 서울행 티켓을 끊었다. 부산에서는 이 씨의 눈높이에 맞는 적당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서울에서는 팀장급으로 일했는데, 부산에서는 직급을 낮춰도 일자리가 거의 없었다. 몇 군데에서 연락이 오긴 했지만 연봉을 절반 수준으로 깎는 바람에 면접조차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도 정부나 부산시의 정책은 여전히 ‘콧대가 높아진 청년을 구슬려 보자’는 식에 머무른다. 지난달 시가 내놓은 서부산권 일자리 미스매치(불균형) 대책이 대표적이다.
시는 서부산권 중소 제조업체에 취직하는 청년에게 장려금 150만 원을 주기로 했다. 물론 시도 정책 목표 1순위인 대기업 유치가 어려우니 차선책을 꺼낸 것이겠지만, 이런 정책은 가장 쉬우면서도 효과는 미진하다.
결국 변화의 초점은 청년이 아닌 지역 기업과 기업 생태계에 맞춰져야 한다. 경영인은 지역에서 인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하소연하지만, 구직자의 눈에 지역 중소기업은 수도권보다 10~20년은 뒤처져 있다.
부산을 지탱해 왔던 전통 제조업이 쇠퇴하는 동안 부산은 고부가가치의 지식기반 산업 등을 육성해 내지 못했다. 그래도 대도시였던 덕택에 음식·숙박·도소매업이나 생활기반형 서비스 등이 양적으로 확충됐지만, 이런 일자리도 수도권에 비해 처우 등이 열악하다.
9년 차 간호사인 박선아(34·가명) 씨는 “부산의 병원 근로자 연봉은 수도권보다 앞자리 수가 2, 3개 정도는 낮다고 봐야 한다”며 “‘싫으면 관두고 떠나라’는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둥지’가 없고, 지방에는 ‘먹이’가 없다는 말이 이제는 격언처럼 굳어지고 있다. 일터를 찾지 못하는 청년은 지금도 부산을 떠나고 있다. 부산의 청년(18~34세) 인구는 2015년 79만 명에서 2022년 65만 명으로 14만 명이나 줄었다. 시는 앞으로 청년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해 2025년 61만 명, 2030년 53만 명에 이어 2040년엔 40만 명 수준으로 주저앉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새로울 것도 없는, 아주 오래된 전망치다. 그동안 이런저런 나름의 정책적 노력이 진행됐으나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했다. ‘적당한 일자리’를 만들어 보려는 시도에 지역 정치권과 상공계가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면 이는 청년을 기만하는 것이다.
기업이 달라져야 청년이 돌아온다.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연봉 체계, 합리적인 조직 문화, 함께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 등이면 된다. 지금 변화하지 않는다면 부산은 ‘소멸’로 예정된 미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