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열 걱정됐던 ‘고향사랑기부제’, 규제 덫에 ‘흥행 참패’
올해 첫 시행 각 지자체 ‘부푼 꿈’
부산 16개 구군 총액 2억 못 미쳐
경남 기초 18곳 목표 5.4% 그쳐
직접 홍보 금지, 동참 호소 못 해
세액공제·답례품 유인 효과 낮아
공제 확대 등 다양한 방법 모색을
1월 1일 ‘고향사랑기부제’가 시행된 지 100여 일이 지났다. 인구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에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취지로 야심 차게 도입됐지만, 예상보다 실적이 매우 저조해 각 지지체는 울상을 짓고 있다.
17일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부산 16개 구·군이 지난달까지 모은 고향사랑기부금 총 누적액은 2억 원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초자치단체뿐만 아니라 특별시·광역시·도 같은 광역자치단체도 기부 대상이다. 부산시는 과열 경쟁 방지와 전년도 기부 내역만 의무적으로 알릴 수 있다는 법령 등을 이유로 모금액을 공개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실적이 저조하기 때문에 공개를 꺼린다는 분석이 나온다.
부산 일선 지자체의 경우 기부자의 대다수인 90% 이상이 전액 세액 공제되는 10만 원 이하 금액을 기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과 같은 광역시의 구·군은 도의 시·군보다 내세울 만한 특산물이 없어 기부금을 모으는 데 상대적으로 불리한 환경이었던 것이 원인으로 보인다. 부산의 구·군별로 온도 차도 뚜렷했다. 한 구의 누적액은 6000만 원 가까이 되는 반면 다른 구의 경우 200만~300만 원대에 머무는 등 기부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나타났다.
경남의 경우 지난달 기준으로 경남도와 18개 시군의 고향사랑기부금 총 누적액은 11억 9000만 원(9208건)이었다.
지자체별 모금액은 고향사랑기부금법에 따라 과열 경쟁 방지를 위해 일반에 공개되지 않는다. 현재 김해시·밀양시·합천군·남해군·하동군에만 1억 원 이상 기부금이 모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는 당초 목표액으로 정했던 지자체당 한 해 11억 4000만 원보다는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경남연구원은 1995~2021년 도내 출향민 수(218만 3900여 명) 등을 근거로 기부금을 산출해 고향사랑기부금 총 218억여 원이 모일 것이라고 추산했다. 이를 19개 지자체에 단순 배분해 목표액(11억 4000만 원)이 설정됐다. 경남은 1분기에 고향사랑기부제 목표액의 5.4%밖에 채우지 못한 셈이다. 이 때문에 도는 당장 기부 목표액을 조정했다. 도는 지난 7일 고향사랑기금운용심의위원회를 열고 목표액을 최종 선정했다. 기존 목표액의 3분의 1 수준으로 낮춘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고향사랑기부제의 실적이 저조한 가장 큰 이유로는 ‘홍보 부족’이 꼽힌다. 관련법상 지자체가 직접 홍보하지 못하고, 언론이나 플래카드 등을 이용해 간접 홍보만 할 수 있다. 간접 홍보에서도 “기부에 동참해 달라”는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야 한다.
기부금 활용 방안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기부금이 어디에 쓰이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어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기부를 활성화할 수 있는 세액공제와 답례품도 기대만큼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진단이다. 현재 연말정산 등 세금에 신경을 쓸 시기가 아닌데다 답례품을 목적으로 삼는 기부자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물가 상승과 경기 침체 등도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원인으로 꼽힌다.
경남 사천시 출신으로 창원시에 사는 김준수(33) 씨는 “부모를 뵈러 고향에 가면 (답례품을)사 올 수 있고 인터넷에서도 다 살 수 있다. 그것을 받겠다고 일부러 기부금을 내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동철 경남연구원 박사는 “고향사랑기부금 제도가 덜 알려진 초기에는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경기 회복, 연말정산 등으로 분위기가 전환되면 실적이 크게 쌓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의 한 일선 지자체 관계자는 “도시에 있는 지자체에는 이색적인 특산품이 없어 기부를 받는 것이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시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다. 제도가 정착할 때까지 좀 더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여러 제약이 많아 홍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맞다. 고향사랑기부제를 적극적으로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 등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대한 기자 kdh@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