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인구소멸 막기 위한 개발의 넌센스
(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다룬 정치 드라마 ‘퀸메이커’가 지난주 넷플릭스에서 오픈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킹메이커’는 한 나라의 새로운 권력자가 탄생하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사람을 말한다. 제목에서 보듯 ‘킹메이커’가 아니라 ‘퀸메이커’라는 것은 여성 중심의 드라마임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치, 경제, 노동, 여성, 교육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내용을 담고 있는 이 드라마는 그동안 뉴스로 접했을 법한 문제의 종합세트처럼 보이는 면도 있지만 이상과 욕망, 보이지 않는 진실,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선악의 구도로 몰고 가는 것 같아 불편할 때도 있었지만 ‘불편한 진실’을 말하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이해했다.
산복로 건물 높이 제한 해제 추진
지역소멸 위기 해법 될지는 의문
공동체 지키는 개발 방안 찾아야
그중 재개발·재건축 내용에 유독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는 직업의식 때문이다. 은성그룹으로 불리는 대기업의 개발권 관련 비리가 주요 사건 중 하나다. 면세점 신사옥 투자자 유치와 허가를 받기 위한 로비는 물론이고, 면세점의 수준에 맞게 인근 상아시장 개발을 진행하기 위해 시장 상인들을 부자로 만들어 주겠다는 공약까지 내건다. 사위를 시장 후보로 내세운 건 정경유착의 끝판을 보여 주겠다는 기업 회장의 욕망이다. 상인들은 재개발이 자신들 삶을 구원해 줄 거라 믿고 이를 말리는 인권 변호사인 주인공 오경숙을 원망하고 폭행한다.
보이는 것만 생각하면 재개발로 잘살았으면 하는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보통은 추가분담금이 부담스러워 입주권을 팔거나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해 외지로 내몰리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거기다 나쁜 방식의 재개발에 상인들이 이용당하는 것을 오경숙 변호사는 우려한 것이다.
북항재개발에 맞춰 원도심 지자체들이 일제히 산복도로 건물 높이 제한 해제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는 1972년부터 동구 범천에서 서구 서대신교차로에 이르는 산복도로 구간은 최고고도지구로 지정돼 건축물 높이를 제한해 왔다. 이를 해제하자는 각 지자체는 고도제한이 원도심 개발을 막고 공동화 현상을 초래했기에 고도제한 규제 완화가 원도심에서 재개발·재건축을 비롯한 주택정비사업과 민간 투자를 늘리고, 따라서 유동 인구도 증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잠깐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산복도로 경관 보존의 문제는 차치하고 인구성장 시대의 재개발·재건축과 인구소멸 시대의 재개발·재건축은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지난 2월 기준으로 전국 228개 기초지자체(시·군·구) 중 118곳(51.8%)이 소멸 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소멸 위험 지역의 비중이 50%를 넘었다는 것은 전국 시·군·구 중 절반 이상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는 것이다. 특히, 부산은 지난해 중·서·동·영도구 등 네 곳이 소멸 위험 지역이었지만 올해는 여기에 남·사하·금정구가 추가돼 16개 구 중 7개 구가 사라질 위기에 있다는 것이다.
지방소멸위험지수는 해당 지역의 20~39세 여성 인구수를 65세 이상 인구수로 나눠 산출한다. 65세 이상 고령층이 가임 여성 수보다 2배 이상 많으면 소멸 위험이 있다고 본다. 거기다 저출산까지 더해졌으니 인구를 늘리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청년들이 가장 많이 언급한 대한민국 저출산 요인은 ‘부동산 가격 상승’이다. 그렇다면 최고급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살고 싶은 집에서 살 수 있는 여건, 집값 걱정 없는 좋은 정주여건 마련이 중요하다.
인구를 늘리기 쉽지 않은 점을 인정한다면, 인구소멸 시대에 빈집이 더 늘어날 거라고 예상한다면, 앞으로 재개발·재건축은 공동체를 지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이에 더해 산복도로에 있어서는 극한 곳으로 내몰리는 사람이 없도록 정책 지원과 살고 싶은 집으로의 재개발·재건축이 필요하다.
두 번째 요건은 생활비와 물가 상승, 높은 교육비, 일자리 등 불안한 경제다. 성장의 혜택이 소수에게 집중되게 되면 나머지 대부분 사람들은 불안한 삶을 살게 된다. 지나친 불평등은 사회분열을 만들고 민주주의의 위기를 만든다. 불안한 삶을 대물림하고 싶은 사람은 없다. 경제적 성과가 모든 계층에게 골고루 배분된다면 소비와 생산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다.
그렇다고 인구 문제를 경제적 관점으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인구 변화가 공동체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한다면 주거, 노동, 교육, 육아에 걸친 사회 전반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요구된다. 그 과정에서 갈등과 논쟁이 있더라도 피하지 말고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 우리의 잘못으로 인한 피해를 미래 세대가 짊어지지 않도록 방향 설정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