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담보 건물 입주자, ‘전세보험’도 가입 못 해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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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담보액 가구별로 채권 산정
거액 저당잡힌 개별 집으로 간주
부산 건물주 잠적 사건 주민들도
HUG·주금공 보증보험 적용 안 돼
사회초년생 등 전세사기 무방비

전세사기 피해자 백이슬 씨가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전세사기 피해자 백이슬 씨가 20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대통령 면담 요청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부산에서 빌라 약 90가구를 보유한 건물주 부부가 전세금 54억 원을 갖고 잠적(부산일보 4월 20일 자 1면 보도)한 가운데, 일부 계약기간이 남은 피해자는 전세보증을 받으려고 했지만 건물주가 전 세대를 공동담보로 설정한 근저당 때문에 거절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문에 현재 전세보증보험 제도의 재검토와 함께 전세피해 대란에 주거안정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잠적한 건물주 부부가 소유한 사상구의 한 빌라에 거주하는 30대 이 모 씨는 지난 13일 은행에 전세지킴보증을 신청했다고 20일 밝혔다. 8개월 전 묵시적 갱신에 따라 계약이 2년 연장된 이 씨에게 ‘계약기간의 2분의 1이 경과하기 전’이라는 조건은 전세금을 떼일 위기에 유일한 희망처럼 다가왔다.

그러나 이 씨는 이튿날 은행으로부터 선순위 근저당권(채권최고액)이 과다해 비대면 신청접수는 불가능하고,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문의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공사에도 문의한 결과 이 씨의 보증 가입은 결국 거절됐다.

거절 이유는 건물에 공동담보로 잡힌 근저당권 11억 원 때문이었다.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전세지킴보증 안내에 따르면, 다가구 주택의 경우 선순위채권총액은 주택가격보다 낮아야 하고, 선순위근저당권설정액은 주택가격의 70% 이내여야 한다. 이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마찬가지다.

이 과정에서 건물에 공동담보로 잡힌 근저당액 모두 1개 가구의 채권으로 계산돼 보증금을 포함하지 않더라도 이미 주택가격을 넘어 보증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 씨는 “주택가격은 건물 전체 가격이 아닌 호실 가격으로 계산하면서 공동담보로 들어간 채권은 내 집의 채권으로 간주했다”면서 “경매에 넘어가거나 문제가 생기면 선순위채권을 해결하는 데 대부분 금액이 사용돼 개개인 사정을 다 봐주면 문제가 생긴다고 설명하는 공사 입장도 이해돼서 알겠다고 했다”고 갑갑한 심경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전세피해 대란을 수습하기 위해 보증보험으로 모든 이를 구제하는 방안에는 한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세입자가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정부가 합리적인 가격에 건물을 사들여 장기거주 자격을 주고, 동시에 건물주를 엄단해 숨은 재산을 찾아내는 등의 조치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산대 서성수 부동산대학원장은 “전세보증은 서민 주거안정을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어찌 보면 악용돼 부동산 폭등의 주범이 되기도 했다”며 “장기적으로는 전세를 유도하는 전세보증보험을 다시 검토하고, 월세가 안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 원장은 ‘보증금 원금 보장’ 관점이 아닌 ‘주거안정’ 차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현재 정부에서 내놓은 경매 연기 등 방안은 미봉책에 가깝다”며 “건물주의 숨은 재산을 찾아 구상권을 행사하고, 정부에서 재원을 마련해 피해자가 완전히 주거지를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3일 출범한 부산시 전세피해지원센터에는 19일까지 전화상담과 방문상담이 총 582건에 달했다. 금융권 저리대출이나 긴급주거지원을 위해 피해확인서를 신청한 이는 10명이다. 4명에게는 확인서가 발급됐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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