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의대 정원 늘려라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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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세헌 사회부장

부울경 지역 곳곳 의료공백 ‘현실화’
의사 수 절대적 부족이 주요 원인
의대 정원 동결은 집단 이기주의 탓
뒤틀린 대학 입시·사교육에도 영향
‘그들만의 리그’인 의료계 무한경쟁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서비스 향상

‘부산 대학병원서 신규 소아과 전공의가 사라졌다’ ‘지역 공공병원, 의사가 안 온다’ ‘보건소 공중보건의 대거 전역…경남 곳곳 의료공백 우려’

모두 올해 〈부산일보〉에 게재된 기사다.

부산지역 6개 대학병원에서 소아과 전공의 지원자가 올해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때문에 전문의가 돌아가며 겨우 당직을 서고 있고, 이는 소아 응급체계 붕괴를 가져온다는 것. 개원의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속된 말로 ‘돈’이 안 되는 소아과 개원을 기피해 소아과 진료 대란이 빚어지고 있다.

부산의료원이나 경남 산청군보건의료원 등 지역 공공병원에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내과 전문의 등을 채용하지 못해 자칫 응급실을 닫아야할 지경이다. 강원도의 속초의료원에서도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구하지 못해 연봉 4억 원대라는 파격적인 제안을 내걸기도 했을 정도다. 일자리가 대도시에도 많은데, 굳이 지역까지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지역 공공병원의 인력난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또 경남 등 농촌 지자체에는 공중보건의가 부족해 곳곳에서 의료공백이 생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전에 비해 여성 의사 비율이 높아졌고, 남성 의사들마저 복무 기간이 상대적으로 긴 공중보건의를 기피하는 경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농촌지역으로선 긴장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위 기사들의 공통점은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원인으로 꼽힌다. 의사가 모자라는데, 그나마 소아과, 산부인과 등 비인기학과는 가지도 않고, 특히 지역은 더더욱 기피하는 현상이 생기고 있다. 어제오늘 일이 아님에도 그동안 정부가 방치하고 있으면서 서서히 곪아갔고 비로소 하나둘씩 터지고 있는 셈이다. 지역 간 의료격차는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은 통계로도 잘 나와 있다. 2021년 기준으로 한국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5명(한의사 제외할 경우 2.1명)이다. 이에 반해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 3.7명이다.

이는 오랫동안 의대 정원이 동결돼왔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18년간 해마다 3058명으로 의대 정원이 묶였다. 보수, 진보 정권 할 것 없이 18년간 모든 정권이 의사협회의 반발에 부딪혀, 혹은 의사협회의 권익만 고려해 국민의 건강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 같은 문제점들이 연이어 터지자 올해도 보건복지부는 의사협회와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어 의대 정원 문제를 논의할 방침이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최근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간호법 제정안과 맞물리면서 의사협회에서 회의 참여를 거부해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대 정원 확대는 비단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서만은 아니다. 비뚤어진 대학 입시를 바로 잡는데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필자의 학창 시절에는 이과생들이 의대 진학에만 목을 매지 않았다. 전교 1~3등의 최상위권 학생들은 오히려 공대 진학을 선호했다. 적성에 따라 의대를 가기도 하고 공대를 가기도 했다. 그러나 IMF를 거치고, 의대 정원이 동결되면서 ‘정년 없는 고연봉직 의사’에 대한 선호도는 갈수록 높아졌다. 현실은 초·중·고교생은 물론 유치원생도 ‘의대 입시’를 위해 사교육을 받기에 이르렀다. 적성이고 뭐고 없이 오직 의대 진학이 1순위다.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 수가 늘어나면 ‘그들만의 리그’에서 무한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상대적으로 희소가치를 가지는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선호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경쟁으로 인한 의료서비스의 질도 향상될 수밖에 없다. 단기적으로는 최상위권 학생들이 의대로 몰리는 현상이 빚어지겠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최상위권 학생들의 의대 쏠림에서 벗어나 적성에 맞는 학과 선택이 늘어날 것이다. 반도체학과 등 정부가 정책적으로 미는 산업군과 학과에 대한 지원책이 더욱 강화된다면 그 기간은 단축될 것으로 보인다.

지역 간 의료격차를 해소하고 뒤틀린 입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첫 단추가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이다.

소아과·산부인과 등 기피 과에 대한 보험 수가 현실화, 지역의료기관 지원 대책 등도 뒤따라와야 한다. 고연봉직의 의료계에 못지않도록 다른 산업군의 처우도 개선돼야 하고, 사교육비 경감에 대한 교육부의 현실적인 대안 제시도 이어져야 한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는 더 이상 의사협회 등 이익단체의 집단 이기주의에 끌려 다니지 말기를 바란다. 지난 18년간 동결했으면 충분하다. 그로인해 심각한 문제가 터져 나온 만큼, 이제는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최세헌 기자 corni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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