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용전 효과와 돈 봉투
한명숙 전 총리는 두 가지 뇌물수수 혐의로 오랫동안 재판을 받았다. 총리 시절인 2006년 인사 청탁 대가로 5만 달러를 받은 혐의다. 2007년 민주통합당(현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앞두고 불법 정치자금 9억여 원을 3차례에 걸쳐 받은 혐의도 있다. 5만 달러 사건은 1·2심, 대법원에서 뇌물 공여자의 진술에 신빙성이 의심된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이 났다. 9억 원 사건의 경우 1심은 무죄였으나 2심과 최종심에서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추징금 8억 8000만 원이 선고됐다.
2010년 한 전 총리의 뇌물수수 혐의 1심 재판 과정에서 ‘용전(用錢) 효과’라는 생소한 말이 등장해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이는 당시 재계에서 사용한 로비용 은어다. 로비 금액은 받는 사람 입장에서 적어서도 안 되고 많아서도 안 된다는 것. 상대방이 섭섭하게 생각해 효과가 없거나 부담을 느껴 거부하지 않도록 적정한 선에서 주는 게 가장 좋다는 뜻이다. 여기서 더 나아간 인물이 1만 원권 지폐로 가득한 사과상자를 로비 수단으로 삼은 고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이다. 정·관계에 100억 원이 넘는 로비 자금을 뿌렸던 그는 돈은 준 만큼 효과가 있다는 뇌물론이 소신이었다고 한다.
최근 민주당의 2021년 전당대회 돈 봉투 살포 의혹이 불거져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 캠프가 현역 의원 10~20명에게 300만 원씩, 간부 당직자들에게 50만 원씩 총 9400만 원의 돈 봉투를 뿌렸다는 것이다. 이에 민주당 일각은 당 대표 후보 지지를 바꿀 정도로 금액이 크지 않고 실비 수준의 활동비로 보이는 데다 정치권의 관행이라는 이유로 변명하고 두둔하거나 검찰 수사에 볼멘소리를 낸다. 이보다는 관련자 출당과 자진 탈당 권고 등 강경한 조치를 요구하는 당내 분위기가 강하지만, 반성 차원이 아니라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위기감에서 리스크를 없애려는 의도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민주당은 2008년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대표 경선에 나선 박희태 전 국회의장이 고승덕 전 의원에게 300만 원이 든 봉투를 전달한 혐의로 기소돼 사법 처리된 사실을 명심할 일이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고 전 의원이 즉시 돈을 돌려주고, 박 전 의장은 “교통비, 식비 등 실비 제공은 관행”이라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선거의 공정성을 해쳤다며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정치권의 검은돈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액수를 떠나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 엄격한 잣대가 요구되는 척결 대상이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