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핑 메카’ 송정서핑학교, 야박한 행정에 '눈물'
부산시·해운대구, 송정해변에
해양레포츠빌리지 건립 추진
사업 부지 내 서핑학교 철거 위기
구유지 동의 얻어 27년간 운영
"노력 무시, 약속 어겨 억울"
젠트리피케이션 유발 비난도
‘서핑 성지’라고 불리는 부산 송정해수욕장에서 30년 가까이 서핑 문화를 발전시켜 온 한 서핑업체가 지자체의 서핑센터 개발 계획 탓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 송정해수욕장을 서핑의 중심지로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서핑업체가 한순간에 내쫓길 위기에 처하자 지자체가 ‘젠트리피케이션(둥지 내몰림)’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 해운대구 송정해수욕장에서 27년째 ‘송정서핑학교’를 운영 중인 서미희(57) 대표는 “서핑만 생각하면서 30년 가까운 세월을 바쳤다. 갑자기 쫓겨나야 한다니 너무 허무하다”며 억울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부산시와 해운대구가 추진 중인 ‘송정 해양레포츠 빌리지’ 사업 부지에 송정서핑학교가 포함되는 바람에 건물을 철거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부산시에 따르면 시는 해운대구와 함께 송정해수욕장에 서핑센터를 짓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문화체육관광부의 ‘남부권 광역관광 개발계획 수립용역’ 사업으로 추진되는 해당 사업은 예산 259억 원을 투입해 대지 면적 4726㎡(지하 2층~지상 4층) 규모의 서핑 시설을 짓는 것이다. 서핑센터에는 복합 플라자, 종합 안내센터, 생존 체험관 등이 입주할 예정이다.
1996년 송정해수욕장에서 서핑 사업을 가장 먼저 시작한 서 대표는 해운대구의 동의를 얻어 해운대구가 소유한 도로 부지에서 서핑학교를 운영해 왔다. 서 대표는 “당시에는 서핑이라는 스포츠가 생소했다. 해운대구 담당자가 일단 도로 부지에서 학교를 운영해 보고 서핑 문화가 발전하면 부지를 매입할 수 있게 해 주겠다고 해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윈드서핑 국내 대회 여성부 1위를 10회나 차지할 정도로 실력 있는 선수였던 서 대표는 서핑 문화 정착을 위해 일본, 호주 등 외국을 찾아가 서핑 문화를 배워 왔다. 동네 아이들에게 서핑을 무료로 가르쳐 주는 게 가장 보람 있었다는 서 대표는 초등학생, 대학생, 119 수상구조대, 초중급자 등을 대상으로 20년 이상 무료 서핑 교육도 실시 중이다. 서 대표가 길러 낸 서핑 국가대표만 해도 딸과 아들을 포함해 7명에 이른다. 서 대표는 서핑을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서핑의 대모’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핑을 위해 송정해수욕장을 찾는 방문객도 덩달아 증가했다.
하지만 해운대구는 송정서핑학교가 가건물에서 운영되고 있다는 이유로 2017년 이후 도로점용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2020년부터는 송정서핑학교 부지에 서핑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해운대구 측은 문체부 공모사업에 지원한 것일 뿐 오는 6월 예정된 공모사업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또 사업을 추진하게 된다면 서핑 문화 발전에 노력해 온 서핑학교와의 상생 방안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해운대구 관계자는 “6월 문체부 발표까지는 기다려 봐야 한다. 용역에 포함되더라도 사업 내용이 일부 변경될 수 있다”면서 “서핑학교가 현재 도로 부지를 불법점용하는 점을 무시하기는 어렵지만 송정해수욕장 서핑 발전에 기여한 부분은 자타가 공인하는 만큼 대안을 추후에 논의해 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서핑업계는 해운대구가 서핑센터를 지어 외부 사업자를 받아들이는 것은 기존의 상인을 쫓아내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유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서핑업체 관계자는 “사실상 서핑 문화를 만들어 온 서핑학교를 없애고 서핑센터를 지어 새로운 사업자를 받겠다는 것은 그동안의 노력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라면서 “해운대구가 정말 서핑을 발전시키고 싶다면 서핑 문화 정착을 위해 노력한 서핑업계 관계자와 함께 머리를 맞대서 서핑 관련 기반 시설을 보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