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이상 고온에 서둘러 핀 배꽃, 기습 한파에 90% '후두둑’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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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년보다 2~9일 앞당겨 개화
영하 추위 5~6일 지속 피해 확산
매실·사과·복숭아·감도 냉해
꽃눈 분화 촉진제도 효과 없어
수정률 하락·기형과일 발생 우려

경남 진주시의 한 배 농가. 냉해를 입은 배꽃이 모두 낙화하자 농민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빈 가지만 쳐다보고 있다. 김현우 기자 경남 진주시의 한 배 농가. 냉해를 입은 배꽃이 모두 낙화하자 농민이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빈 가지만 쳐다보고 있다. 김현우 기자

“꽃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이런 피해는 농사 짓고 처음입니다. 올해 농사 망쳤습니다”

이상고온에 이어 영하권 꽃샘추위가 교차하는 변덕스러운 날씨가 이어지면서 과수 냉해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경남 진주시와 하동군 등 일부 지역 배 농가는 올해 농사를 포기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23일 찾은 진주의 한 배 과수원에는 봄철에 느껴지는 활기를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흐드러지게 핀 하얀 배꽃 사이로 농민들이 바쁘게 솎기작업을 하고 있어야 할 시기지만 농민들은 아예 일손을 멈췄다.

일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배꽃이 떨어져 그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빈 가지만 바라볼 뿐이다.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중순까지 꽃샘추위가 찾아오면서 배꽃이 냉해를 입은 것.

해마다 조금씩 냉해를 입지만 올해는 절반 넘는 배꽃이 떨어질 정도로 피해가 극심하다.

남은 배꽃 역시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

시들었거나 수정이 되질 않은 상태로, 손을 대자 마자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고 있다.

진주에서 배 농사를 짓고 있는 김건수 씨는 “피해가 적은 곳도 60%는 떨어졌다. 많은 곳은 90% 정도 낙화가 됐다. 인건비도 건지기 힘든 상황이다. 올 가을 해외수출 물량 계약이 돼있는데 걱정이 크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과수원 바닥에는 낙화한 배꽃이 가득하다. 김현우 기자 과수원 바닥에는 낙화한 배꽃이 가득하다. 김현우 기자

24일 기상청에 따르면 3월 중순 이후 경남지역의 낮 최고 기온은 대부분 19~26℃ 안팎을 기록했다.

예년에 비해 3~4℃ 정도 높은 기온으로, 경남 외 다른 지역도 평년 대비 기온이 높았다.

평균기온이 올라가니 과수 개화시기도 빨라졌다.

농촌진흥청에서는 올해 개화시기가 배는 지역에 따라 평년보다 2~9일, 복숭아는 경북 청도 기준 4월 3일로, 평년 대비 최대 10일 빠르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상고온으로 다소 빨리 개화가 된 상태에서 꽃샘추위가 불어닥쳤다는 점이다.

3월 중순에서 4월 초까지 5~6일 정도 영하권을 기록했고 경남은 최저기온은 -1℃, 전남은 -3℃ 안팎 등을 기록했다.

냉해를 입은 배꽃. 속이 시커멓게 썩어있다. 김현우 기자 냉해를 입은 배꽃. 속이 시커멓게 썩어있다. 김현우 기자

개화기 최저기온이 -1℃ 이하로 떨어지면 과수 서리피해가 우려되는데, 저온으로 꽃이 피해를 입으면 수정률이 낮아지고 결국 조기 낙과 등 큰 피해로 이어진다.

여기에 기형과 발생률 역시 큰 폭으로 올라 상품성도 떨어진다.

배 뿐만 아니고 매실과 사과, 복숭아, 감 등 3월 중순에서 4월 초중순 꽃이 피는 다른 과수들 역시 대부분 냉해를 입었다.

이수정 하동군매실연합회 사무국장은 “냉해를 막기 위해 월동기 때 꽃눈 분화 촉진제도 살포했지만 소용없었다. 농사를 40년 지었지만 이런 피해는 처음 입는다. 너무 속상하다. 해마다 2000만 원 이상 수익을 내지만 올해는 500만 원도 채 안 될 것 같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다”고 말했다.

하동의 한 매실농장. 배와 마찬가지로 꽃이 냉해를 입었다. 김현우 기자 하동의 한 매실농장. 배와 마찬가지로 꽃이 냉해를 입었다. 김현우 기자

진주와 하동은 특히 피해가 더 심각하다.

지난 6~7일 이틀 동안 비가 내린 상태에서 8~9일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져 수정 과정에 있었던 배꽃을 완전히 얼려버렸다.

여기에 당시 내린 비가 황사비여서 수정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농민들은 어떻게든 피해를 줄여보기 위해 드론을 이용한 인공수정, 연소장치 설치 등 시도를 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배농사를 짓고 있는 강진석씨는 “황사비가 배꽃을 코팅한 건지, 인공수정을 4번이나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오히려 인건비만 날렸다. 한 나무에 정상인 과(열매)가 불과 10개 안팎이다. 이대로는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수정이 제대로 된 정상과 모습. 하지만 한 나무에 10개 안팎만 달려 있는 상태다. 김현우 기자 수정이 제대로 된 정상과 모습. 하지만 한 나무에 10개 안팎만 달려 있는 상태다. 김현우 기자

현재 전국적으로 집계 중인 농작물 냉해 피해 면적만 2000ha가 넘는 상황으로, 비교적 피해규모가 적은 농가까지 포함하면 그 규모는 훨씬 더 넓을 것으로 예상된다.

냉해 보험을 든 농민의 수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 보험에 들어도 보상은 피해금액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여기에 이미 올 가을 수출 계약을 맺어놓은 몇몇 농단은 이번 냉해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경남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피해가 많다. 정확한 피해규모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는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상황을 인지하고 정밀조사에 나설 계획이다. 정확한 규모가 알려지면 대책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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