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 벌인 동거녀, '가을이 학대' 관여 가능성
친모 "양육에 영향력 행사" 밝혀
경제적 문제·일상 등 공유 많아
의존도 높아 신빙성 상당 지적
아동학대 책임 덜 의도 분석도
가스라이팅 성매매 착취와 아동학대가 맞물려 빚어진 ‘가을이 사망 사건’(부산일보 3월 30일 자 8면 등 보도)에서 가스라이팅 주체인 동거녀가 가을이 양육에도 깊이 관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동거녀가 단순한 아동학대 방조를 넘어 큰 책임이 있다는 의미여서 향후 파장이 예상된다.
2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가을이 친모 A 씨는 가을이 양육과 훈육, 학대에서 동거녀 B 씨가 영향력을 행사하며 개입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가을이가 몰래 음식을 먹으면 B 씨가 훈육을 지시했고 A 씨가 이를 따르는 등의 방식으로 장시간 양육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동안 A 씨는 아동학대나 양육 방식과 관련해 B 씨 개입 정도에 대한 말을 아껴왔다.
A 씨의 최근 입장은 아동학대에 대한 본인의 책임을 덜어 내기 위한 것으로도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A 씨가 B 씨에게 경제적인 부분을 넘어 양육과 일상에서도 상당히 의존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시되는 만큼, 이 같은 입장이 상당한 신빙성을 가지고 있다.
〈부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가을이는 2020년 8월 부산으로 온 뒤, 부산의 한 어린이집을 수개월 정도 짧은 기간 다녔다. 입학 상담 등 어린이집을 방문할 때마다 두 사람은 동행했고, 어린이집 측도 가까운 친구로 판단했다. 이때부터 이미 A 씨는 B 씨로부터 독립적으로 가을이를 키우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상담을 할 때나 집으로 전화가 올 때도, B 씨가 답하고 결정했다”며 “B 씨가 부산을 잘 아니 그렇게 됐고, B 씨가 어린이집을 그만두라고 해 어리석게도 그대로 따랐다”고 설명했다.
특히 가을이 모녀와 B 씨 가족은 10여 평의 비교적 좁은 주거지에서, 장기간 한 방에서 서로의 일상이 노출된 상태로 생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스라이팅 대상이 된 A 씨 입장에서는 완벽한 통제와 감시가 이뤄졌던 공간이었다. 당시 A 씨는 B 씨 지시로 2400여 회의 성매매에 나서고 1억 2000만 원이 넘는 대금 전부를 전달할 만큼, B 씨에게 정신적으로 심각하게 의존하는 상태였다.
두 사람의 기형적 관계와 공간적 특성 등을 감안하면, A 씨가 온전히 자신의 의지만으로 가을이를 양육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범죄심리학 전문가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그런 주거지) 환경에서 살다보니 사회로부터 격리는 심화됐을 것”이라며 “집단 압력과 압박이 밤낮없이 이루어져 그 결과로 가스라이팅이 되고 자유로운 의사결정이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아동학대에서 두 사람의 책임 정도에 대한 충분한 조사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평가된다. 앞선 가을이 사망 뒤 이뤄진 검경 조사에서 A 씨는 아동학대에 있어 B 씨의 관여 부분을 적극적으로 진술하지 않았다.
당시 A 씨는 장기간 가스라이팅으로 객관적인 판단이 어려운 상태였고, 경제적인 사정으로 변호인 고용을 하지 못하는 등 외부 도움을 받기도 힘들었다. 이 때문에 주도적으로 구체적인 진술을 하기 어려운 정신적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B 씨는 현재 아동학대와 관련해선 방조 혐의만 인정돼 기소된 상태다. B 씨에 대한 입장이 달라진 것에 대해 A 씨는 “그동안 혼자 다 짊어지고 가면 된다고 체념했다. 포기상태였다”고 설명했다.
A 씨의 이런 주장에 대해 B 씨 측 변호인은 “답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2020년 8월 가을이 모녀는 B 씨의 집에 동거했고, 이후 B 씨는 장기간 A 씨를 가스라이팅해 성매매 착취를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동거 기간 가을이는 아동학대를 받다 영양결핍 상태서 지난해 12월 폭행 뒤 방치돼 숨졌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