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조례 지원하는 ‘법제협력관’…업무 폭증하는데 내년 폐지
전국 지자체 조례 등 자치법규 제정 급증
법제처 법제협력관 파견해 지원업무 담당
3개 시도만 협력관 유지, 이마저도 폐지 예정
현재 전국 광역·기초 지자체에서 제정된 조례는 18만 건에 이른다. 과거에는 조례없이 관행적으로 지방사무를 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자체 사무가 훨씬 광범위해지고 소송 등의 가능성도 늘어나면서 이제는 모두 조례를 통해 법적근거를 만들고 있다. 조례가 지자체를 움직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지자체 일반 행정직이 조례 입법을 진행하다보니 전문성이 떨어지는데다 순환 근무로 업무 연속성도 없어 실수나 부작용이 적지 않다.
이에 법제처는 광역시도에 법제협력관을 파견해 자치법규에 대한 법리검토와 자문, 대안제시 등의 업무를 맡도록 했다. 현재 울산시에 손문수 법제협력관, 경북도에 김태원 법제협력관, 강원도에 유태동 법제협력관이 파견돼 있다.
지금 전국 거리에 정당 현수막이 꽤 많다. 이는 정당이 정책이나 현안에 관한 플래카드를 설치할 경우, 옥외광고물법상 제한 규정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표현이 지나친 플래카드도 있고 교차로에서 차량을 살피는데 방해가 되기도 한다. 울산에서는 주민들이 이들 플래카드를 규제해달라는 민원이 많자 조례를 만들어 현수막을 규제하려고 했다.
하지만 손문수 법제협력관은 “상위법에서 규제를 풀었는데 조례에서 다시 규제할 수는 없다”며 조례 제정이 불가하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어차피 조례가 제정돼도 정당 측에서 문제제기를 하면 무효가 될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태원 법제협력관은 “경북엔 다양한 지역축제가 있는데 보조금이 지급된다. 그런데 도에서 평가지표를 만들어 하위 30%에 해당하는 축제는 보조금을 거둬들인다는 조례를 만들려고 했다”며 “하지만 이 조례는 상위법에 저촉된다고 알렸다”고 말했다. 그는 “상위법에는 보조금 환수조건을 부정수급이나 목적외 사용 등만 가능하도록 했다”며 “보조금 낭비를 막기 위한 의도는 잘 알겠지만 조례에서 또다른 환수조건을 거는 것은 안된다는 점을 알렸다”고 말했다. 이들 두 사례는 쉽게 이해되는 경우를 들었지만 실제 자치법규 제·개정엔 매우 복잡한 내용이 많아 전문지식이 필수적이다.
18만건에 이르는 지자체 조례 중 오래 전 만들어진 조례의 경우, 법리검토에 들어가면 여러 문제점이 발견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에는 법제협력관 제도가 없었고 문제점 검토를 지원할 다른 인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김태원 법제협력관은 “과거의 조례 중 잘못된 조례를 발굴해 다시 맞춰주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태동 법제협력관은 “지자체가 선의로 만드는 조례도 많지만 단기간 내 만들고 급하게 사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며 “그 과정에서 적법성 확보를 위해 법리검토가 반드시 돼야 한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한때 11개 시도 전체에 파견됐던 법제협력관이 다 없어지고 이들 3명만 남은데 있다. 이들도 곧 업무가 종료된다. 부산과 경남은 2022년 폐지됐다. 행정안전부가 중앙정부에서 보내는 지자체 파견직을 축소하라는 방침을 세웠기 때문이다.
손 협력관은 “자치입법 수요는 폭증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법리적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법제협력관이 근접 밀착 지원하고 있는데 행안부 축소 방침에 따라 모두 없애야 할 상황”이라며 “지자체가 오히려 크게 안타까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협력관은 “지방시대를 열기 위해서는 올바른 자치법규 제정이 필수적”이라며 “법제협력관이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지금 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강화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손 협력관은 “지자체 교육수요도 많아 며칠 전 전주까지 가서 법제교육을 하고 왔다. 강의를 듣는 지자체들이 법제협력관을 파견해달라고 요청한다. 협력관 제도를 되살릴 방법이 없는지 물어볼 정도로 관심이 높다”고 말했다.
김덕준 기자 casiopea@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