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문화 백스테이지] ‘오페라의 유령’ 부산 장기 공연이 주는 의미
조승우·김주택 등 주역은 달라도
원작이 주는 감동과 스케일은 여전
'드림씨어터 효과’라고 불러도 좋을
100회 넘는 부산 장기 공연 역할 '톡톡'
5월 4일 오후 2시 마지막 표 판매 개시
그날따라 여주인공 ‘크리스틴’은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갑작스럽게 바뀌었다. ‘팬텀(오페라의 유령)’ 역을 맡은 조승우 배우 컨디션도 썩 좋아 보이진 않았다. 나중에 조승우 소속사 굿맨스토리가 SNS를 통해 올린 조승우 인터뷰에 따르면 연습 초반부터 급성 부비동염, 축농증, 비염, 감기 등이 차례로 찾아와서 매우 고생했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 ‘하차’까지 고민했으나 동료들의 응원 속에 난관을 헤쳐 나가는 중이라고 했다.
솔직히 ‘오페라의 유령’ 뮤지컬을 처음 보는 게 아니어서 조승우가 나오는 ‘오페라의 유령’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기대가 컸다. ‘조승우 회차’가 가장 빨리 매진 대열에 든 것도 나 같은 생각을 가진 이들 때문이었을 게다. 아쉽게도 이날 공연은 기대에 못 미쳤다. 내가 본 그날 그 공연이 하필이면 ‘머피의 법칙’이 적용됐을 수 있겠지만, 성악 전공자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조승우 팬텀은 애잔하게 느껴졌다.
물론 조승우가 ‘오페라의 유령’을 대표하는 건 아니다. ‘기대에 못 미쳤다’로 표현했지만, 원작이 주는 감동이라든지, 스케일은 확실히 남달랐다. 그로부터 1주일 뒤 ‘김주택 팬텀’으로 바꿔서 다시 ‘오페라의 유령’을 봤다. 크리스틴은 같고, 라울과 칼롯타 캐스트가 달라졌다. 같은 작품을 두 번 보게 돼 신선함은 덜했을지 몰라도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동이 밀려들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을 성사시킨 국내 1세대 프로듀서인 설도윤 ‘오페라의 유령’ 예술감독이 지난달 24일 부산을 찾았을 때 “어떤 자세로 보느냐에 따라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더니 ‘조승우 팬텀’에 집착하며 봤을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설 감독이 “‘오페라의 유령’은 출연자가 누구냐고 묻지 말라”고 하면서 “역시 명작은 영원하구나 싶었다”는 경험담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문득, 드림씨어터라는 뮤지컬 전용 극장이 부산에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됐다. 남들은 한 번 보기에도 힘든 공연을 두 번이나 볼 수 있었다는 점도 그렇고, 서울을 오가며 봐야 했다면 가당키나 했겠는가 말이다.
개막 이래 한 달 가까이 장기 공연하면서 ‘오페라의 유령’은 부산 뮤지컬사를 새로 써 나가는 중이다. 오는 6월 18일 부산 공연 폐막 때까지 마지막 티켓 오픈(5월 4일 오후 2시) 일정이 남아 있지만, 최종 공연 횟수는 103회(프리뷰 4회·본 공연 99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프리뷰 공연이 시작된 3월 25일부터 이달 25일까지 한 달간 공연예술통합전산망에 나타난 부산 티켓 판매액 77억 9524만 7000원 가운데 62.9%(61억 5695만 원)를 뮤지컬이 차지한 것을 보더라도 그 비중이 짐작된다. 뮤지컬 뒤를 이어서 대중음악 16%(11억 9695만 원), 서양음악 10%(2억 723만 5000원), 연극 4.7%(6179만 1000원) 순으로 나타났다.
‘오페라의 유령’이 부산 뮤지컬 공연 전체를 대변하는 건 아니지만, 평소 30~40%대 비중에서 60%까지 치고 올라간 것을 보면 확실히 영향은 미친 것 같다. 같은 기간 대구의 티켓 판매액(26억 1857만 6000원) 중에 뮤지컬 비중이 46.3%(17억 8453만 8000원), 서울이 38.5%(509억 3993만 4000원 중 222억 7927만 2000원)로 나타난 것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처럼 유례없는 ‘오페라의 유령’ 지역 장기 공연은 부산으로선 엄청난 도전이고 획기적인 사건이라 할 만하다. 현재 공연 중이라 전 예매처 취합은 어려우나 대략 40% 정도가 타 지역 예매율(부산 외 지역)로 파악되고 있다. 금~일요일 주말을 끼면 서울 등 수도권 비중이 40%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코로나 시기에도 불구하고 개관 4주년까지 잘 버텨준 드림씨어터가 부산 시민으로선 고마울 지경이다.
사실 한국 공연 시장의 수도권 편중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그것도 공연장 여건에 기인한 바 크다. 일정 규모 이상의 안정적인 공연장 확보야말로 뮤지컬 흥행의 필수 조건이다. 특히 4대 뮤지컬(오페라의 유령·미스 사이공·레미제라블·캣츠) 공연 제작비를 조달하려면 최소한 1500석 규모는 돼야 지역에서도 대규모 뮤지컬 공연이 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번 부산 장기 공연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다른 한편으론 “리조트가 발전한 도시는 공연이 안 된다”는 속설도 있지만 “부산은 리조트가 발전된 다른 도시와 다르게 복합적인, 잠재력인 큰 도시여서 또 다른 기대를 걸게 된다”는 목소리에도 내심 귀 기울이게 된다. 서울만 쳐다보고 제작되는 공연이 아닌, 지역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지역 공연 문화 활성화뿐 아니라 지역민의 문화예술 향후 여건도 확실히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오페라의 유령’ 공연을 계기로 부산 시민의 정서가 한층 풍부해지는 동시에 삶의 질도 높일 수 있는 환경이 되면 좋겠다”는 설 감독의 언급이 꼭 이루어지길 바란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