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홀로 빛난 대통령, 빛바랜 성과
김영한 정치부장
윤 대통령 감춰진 매력 돋보인 방미
안보나 경제 성과에는 평가 엇갈려
대통령실 헛발질로 비난 여론 자초
잇따를 외교 이벤트엔 더 신중해야
지지율이 30% 아래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미국 국빈방문은 국민적 지지를 이끌어낼 전환점이 될 수 있었다. 대통령실은 일찌감치 방미를 준비했다. 한·미동맹 70주년이라는 명분도 잘 살렸다. 결국 대통령이 12년 만에 국빈방문 형식으로 미국으로 건너갔고, 방미 기간 내내 성대한 환대를 받았다. 환대가 어떤 청구서를 내밀기 위한 것 아니었나 내내 불안하긴 했다.
출발 전 외신 인터뷰로 논란을 자초한 대통령도 미국에서는 호감 지수를 끌어올릴 만한 면모를 수차례 보였다. 호평이 쏟아진 미국 상하원 합동연설이 대표적이다. 40분 넘는 연설 내내 윤 대통령에게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분명하면서도 쉬운 영어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외국인 특유의 억양은 감출 수 없었다 해도 전달력이 큰 연설을 수행했다. 내용도 수준급이었다. 한·미동맹의 역사, 한국전쟁 때 미국의 헌신에 대한 감사, 자유민주주의 등 다양한 주제가 설득력 있게 전달됐다. 방탄소년단을 언급한 조크나 청중과의 호응도 자연스러웠다. ‘자랑스럽고 감격스러웠다’ ‘한국말로도 힘든 연설을 영어로 유창하게 해냈다’ ‘교과서에 실려도 손색 없는 연설이었다’…. 연설 영상에 달린 댓글은 칭찬일색이다.
국빈만찬에서 애창곡 ‘아메리칸 파이’를 열창한 윤 대통령 모습은 매력 넘쳤다. 깜짝 요청에도 당황하기는커녕 참석자들의 환호를 이끌어냈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쉽지 않은 곡 특유의 감성을 살려냈고 무대 매너도 매끄러웠다. 개인적으로 윤 대통령이 공식 행사나 이벤트에서 지금껏 보여준 어떤 모습보다 돋보인 두 장면으로 꼽고 싶다. 얼마나 많은 국민에게 두 장면이 전달될지는 알 수는 없지만 말이다.
두 장면과 달리 안보나 경제 분야 성과는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같은 사안이라도 해석이 극과 극으로 갈릴 수 있다. 지지보다 반대가 곱절가량 많은 대통령 인기를 고려한다면 더 치밀하게 조율하고 발표 역시 매끄러워야 했다.
방미 성과 하이라이트라 할 ‘워싱턴 선언’에도 상반된 평가가 따라붙었다. 과거 북핵 억지력과 관련한 추상적 약속만 있었다면 워싱턴 선언은 문서로 처음 남겼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된다. 실질적인 핵 억지력도 지닐 것으로 보인다. 한반도 해역 물 밑 어디선가 미국의 핵잠수함이 다닌다면 북한도 더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다른 시각도 있다. 방미 전 가능성이 거론되던 전술핵 배치는 언급조차 없고 핵잠수함 몇 번 보내주겠다는 걸 성과라고 내세우냐는 지적이 귀에 박힌다. 세세한 사안에는 허점이 더 많다는 분석도 나온다. 워싱턴 선언은 선언이지 협약이나 조약이 아니며 양국 대통령이 가치와 방향을 공유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는 대통령실 항변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대통령실 실축이 얹히면서 이런 목소리는 묻혔다. 방미 전 나토식 핵공유에 버금가는 한국식 핵공유를 이끌어내겠다는 호언장담은 내놓지 말았어야 했다. 결과물도 나토의 그것에는 못미쳤다. 나토의 핵기획그룹(NPG)은 장관급 협의체인 반면 한·미 핵 협의그룹(NCG)은 실무진 차원의 논의의 틀이다. 유럽 여러 곳에는 전술핵이 실제 배치돼 있지만 워싱턴 선언은 오히려 한반도에 전술핵 배치가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했다.
핵 공유 의미를 놓고 대통령실과 백악관 입장이 정면 충돌한 장면은 특히 상징적이었다. “국민이 사실상 미국과 핵을 공유하면서 지내는 것으로 느껴지게 될 것”이라는 대통령실 참모 발언에 곧바로 “워싱턴 선언이 핵 공유라고 보지 않는다”는 미국 측 반응이 뒤따랐다.
경제 부문 성과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평가가 우세해 보인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나 반도체과학법 관련 윤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에게 어떤 성과를 얻어내느냐는 진작부터 주목됐다. 대통령실은 “한·미 정상 간 한국 기업의 부담과 불확실성을 줄인다는 방향성에 대해 명쾌하게 합의됐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한국 정부의 요구들에 명문화된 약속을 내놓지 않았다. 차세대 반도체 분야 공동 연구개발, 소형모듈원자로 협력 등 많은 분야의 성과도 묻혀버리는 분위기다. 의전만 화려하게 받고 왔다는 비판이 더 도드라진다.
한·일정상회담, 한·미·일 정상회담 등 곧 외교 이벤트들이 다가온다. 3국 간에 더 구체적이고 세세한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그나마 이번 정상회담에서 많은 걸 얻어냈어야 다음 행보가 더 쉬워졌을 테지만 그러지 못했다. 앞으로 이어질 3국 간에 보이지 않는 힘 겨루기나 협의에서도 제대로 해낼까 쉽게 신뢰를 보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논란이나 대통령 지지도와는 별개로 국익이 걸린 복잡다단한 문제들인 만큼 얻은 성과만큼이라도 평가를 받기를 기대한다. 더는 실책이 없어야 할 것이다. 윤 대통령 방미 결과에 대한 국민 평가가 어떨지 곧 공개될 여론조사 결과가 사뭇 궁금해진다.
김영한 기자 kim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