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가장 미국적인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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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디 홀리가 죽은 후 모든 게 내리막이야.” 조지 루카스 감독의 영화 ‘아메리칸 그래피티’(1973)에 나오는 대사다. 미국의 1950년대와 60년대, 그러니까 풍요와 혼돈, 그 영욕의 경계를 저만치 적확히 표현한 것도 없다. 버디 홀리는 1950년대 미국 대중음악을 주름잡은 스타다. 엘비스 프레슬리를 이어서 백인 로큰롤을 완성한 인물이다. 그가 비행기 사고로 죽은 게 1959년이었다. 그와 함께 탄 리치 발렌스, 빅 바퍼 같은 당대 스타들도 덩달아 목숨을 잃었다.

저기서 1950년대 미국의 몰락을 소환한 이가 돈 매클레인이다. 철저히 미국인의 관점에서다. 그가 1971년 발표한 노래 ‘아메리칸 파이’가 그 집약체다. 8분이 넘는 러닝타임에도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대중음악의 하나로 손꼽힌다. 가사에는 미국 사회의 다양한 이슈와 수많은 일들이 열거된다. 단순한 팝송이라기엔 은유와 상징이 가득해서 읽어 내기 쉽지 않다.

매클레인이 이 노래의 의미를 명쾌하게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충분히 짐작 가능하다. 풍요롭고 순수했다고 믿는 1950년대의 종말에 대한 안타까움, 혼란과 갈등의 질풍노도 시대인 1960년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1950년대는 2차 세계대전 이후 대영제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강국으로 호황을 누린 미국의 황금기였다. 반면 베트남전쟁에다 반전·민권 운동이 거셌던 1960년대는 완전히 달랐다. 1950년대의 영광을 잃어버린 시대로 여겨진다.

대중문화에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휘몰아쳤다. 1960년대 들어 영국이 장악한 음악판의 지각변동은 무시무시했다. 앞서 말했듯 징후가 없지 않았다. 1958년 엘비스 프레슬리가 입대하고 그와 쌍벽을 이룬 로큰롤 스타 리틀 리처드는 은퇴해 목사가 된다. 거기에 버디 홀리까지 갑작스러운 사고사를 당했으니, 훗날 매클레인이 이날을 ‘음악이 죽은 날’이라고 했던 것이다. ‘아메리칸 파이’에는 자존심에 난 생채기 같은 것이 어른거린다. 그 정서는 ‘미국 제일’ ‘미국 만세’와 동전의 양면이다. 세워 올린 엄지에 성조기를 그려 넣은 당시의 음반 표지가 벌써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이 백악관 만찬에서 ‘아메리칸 파이’를 불러 화제를 모았다.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가 부르는 이 노래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그것도 개인 신분의 사적인 자리가 아니라 공식 만찬장이었고, 다른 곡도 아니고 가장 미국적인 것을 절규한 노래였다. 과연 적절한 일인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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