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속절없이 무너진 안전펜스… 학교 가던 초등생 ‘날벼락’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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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구 청학동 등굣길 참사 왜?

사고 현장 경사도 10~15도 되는 비탈길
작년 차 미끄러짐 사망 사고 발생하기도
주정차 금지 구역서 장시간 어망 하역작업
화물 취급 때 이탈 방지 별도 버팀목 미비
어린이보호구역 펜스도 제 기능 발휘 못 해


지난달 28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 한 스쿨존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지게차에서 떨어진 1.7t짜리 낙하물이 인도를 덮쳐 초등학생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 정종회 기자 jjh@ 지난달 28일 부산 영도구 청학동 한 스쿨존에서 하역 작업을 하던 지게차에서 떨어진 1.7t짜리 낙하물이 인도를 덮쳐 초등학생 1명이 사망하고 3명이 부상을 입는 사고가 발생했다. 30일 사고 현장에 마련된 추모 공간. 정종회 기자 jjh@

여느 참사가 그러하듯 부산 영도구 등굣길 참사 역시 여러 안전 불감증이 맞물린 결과였다. 작업 중 안전 대책이 소홀했던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고, 지자체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이뤄진 불법 작업을 걸러내지 못했다. 만일 작업자들이 안전에 더 신경 썼다면, 도로의 안전 펜스가 튼튼했다면, 지자체의 관리망이 좀 더 촘촘했다면, 초등학생의 등굣길이 악몽의 현장이 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사고 발생 사흘째인 30일 낮 12시께 영도구 청학동 한 아파트 근처 어린이보호구역 사고 현장에는 국화꽃과 함께 아이들이 가져다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장난감, 간식들이 놓여 있다. 좁은 인도의 옆 벽에는 사고로 희생된 A(10) 양에 전하는 편지들이 붙어 있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등 미안함과 그리움 등을 담은 글들이 적혀 있다. 이날 추모 공간에서 만난 A 양이 다니던 초등학교의 한 학생은 자신이 아끼는 장난감을 내려놓으며, 행여 바람에 물건들이 날아갈까 걱정하고 있었다.

사고 지점은 영도구 봉래산 자락을 따라 난 급경사길로 부산항대교가 내려다보일 정도로 높은 비탈길이다. 하역 작업이 이뤄진 곳의 경사도는 10도 안팎, 170여m 아래 사고 지점은 경사도가 15도 안팎 정도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1.7t짜리 원형 어망실이 굴러왔다면 속도가 매우 빨라져 충격이 매우 클 수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사고 당시 낙하물이 굴러떨어지는 모습. CCTV 캡처 사고 당시 낙하물이 굴러떨어지는 모습. CCTV 캡처

사고 지점 아래로는 A 양이 다니던 초등학교가 있고, 위로는 아파트 단지가 조성돼 있다. 학생들은 등하교하면서 비탈길을 지나야 한다. 그런데도 인근엔 소규모 업체들이 있어 화물차들의 통행이 잦다. 취재진이 현장을 찾았을 때도 대형 컨테이너 차량이 코너를 돌다 전봇대를 스치는 아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인근 주민 40대 전 모 씨는 “사고 당시 도로를 지나던 차량은 없었다”며 “학생들이 많이 몰리는 등교 시간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사고가 발생했는데, 조금만 늦었으면 더 많은 아이가 피해를 볼 뻔했다. 사고 지점 바로 옆은 아이들이 학원 차를 타는 곳”이라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주정차 금지 구역에서 도로를 점령하고 장시간 어망 하역작업이 이뤄졌다는 걸 확인했다. 불법 정차 상태의 작업 외에도 안전 수칙 미이행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하역 과정에서 화물의 굴러감 방지를 위한 버팀목 설치도 미비한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르면 경사면에서 드럼통 등 화물을 취급할 때는 멈춤대나 쐐기 등을 이용해 화물의 이탈을 방지해야 한다. 하지만 경찰은 당시 사고 현장에서 화물 굴러감을 방지하기 위한 별도의 버팀목 사용이 없었다고 보고 있다. 해당 업체는 도로에 설치된 가로등에 화물을 기대어 놓기만 했을 뿐, 별도 고임 장치를 하지 않았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위험한 지형에서 위태로운 작업을 하면서 제대로 된 최소한의 안전 장치도 마련하지 않았다는 건 안전 불감증이 그만큼 심각했다는 걸 말해 준다.

특히 해당 도로에선 차량 미끄러짐에 의한 사망 사고도 있었다. 그만큼 급경사지의 위험성이 큰 지형이었다. 지난해 7월 내리막 도로를 주행하던 16t 정화조 차량이 전봇대를 들이받고 뒤집히면서 불이 나는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차량은 중앙선을 넘어 가로등 등 구조물과 잇따라 부딪히며 약 60m를 더 나아가다 전봇대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차량이 전소됐고 운전자인 60대 남성이 숨졌다. 사고의 위험성이 예견됐던 셈이다.

안전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 격인 안전 펜스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다. 해당 사고 지점에는 어린이보호구역 지정에 따른 안전 펜스가 설치돼 있었지만, 화물이 굴러오자 힘없이 무너졌다. 1.7t짜리 대형 어망실이 아니라 차량이나 화물이 돌진하는 사고였다고 하더라도 펜스가 제 기능을 못 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찰은 초등학생이 희생된 비극적인 사건인 만큼 경위를 파악한 뒤 엄중하게 법 집행을 하겠다는 입장이다. 영도경찰서 관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라 무거운 마음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며 “하역 작업에 필요한 계획서가 제대로 작성됐는지, 필요한 안전 인원이 배치됐는지 등 전반을 살펴볼 계획이다”고 밝혔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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