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메리칸 파이’가 선물한 국민 공감
홍진옥 전 인제대 기초대 교수
최근 윤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에서 불렀던 ‘아메리칸 파이(American pie)’는 미국 문화를 이해하고 미국인의 정서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골랐다고 한다. 1950년대 잘 나가던 미국의 정치 및 대중음악에 대한 향수와 정서가 담겨 있는 가장 미국적인 노래로 미국인의 마음을 움직였고 폭발적인 공감을 끌어냈다.
그런데 우리 정치는 왜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가? 모 국회의원은 넷플릭스에서 한국 정부에 투자를 약속했다는 사실을 거꾸로 한국 정부가 넷플릭스에 투자하기로 했다고 실언을 해 질타를 받고 있는가 하면, 어떤 정치인은 일본의 ‘강제 징용 제3자 배상안’에 대해 “100년 전의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릎을 꿇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국민 정서에 반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불러왔다. 차라리 우리가 과거의 아픈 기억에만 매달려 있다면 급변하는 정세에 생존할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었다고 말을 했더라면 국민 자존감에 상처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 공감은 국민과 소통하고 설득해야 얻어진다. 아직도 정부가 왜 ‘강제 징용 제3자 변제 방안’을 택했는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국민과의 소통 부족에 기인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국민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강제 징용 제3자 변제 방안’ 해법을 발표하기 전에 국민들에게 왜 이 방안이 필요한지를 설명하는 기자 회견을 했더라면 국민의 공감을 얻었을 것이다.
지금의 한반도는 구한말의 정세처럼 풍전등화에 직면해 있다. 북한은 핵 개발로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연대를 형성해 한반도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과의 동맹이 최고라는 동맹 제일주의 논리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친일 동맹이 중요하다고 해도 ‘강제 동원 배상안’은 피해자들의 기억과 국민 정서를 배제한 성급한 조치라고 여겨진다. 해결의 최소한의 조건은 피해자의 의견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배상 책임을 부정해 온 일본 기업들에게 ‘제3자 변제안’은 가해자의 책임에 면죄부를 주었고, 그 결과 피해자의 아픈 기억이 누락된 상태에서 가해자들에게 나머지 빈잔을 채우기를 기대하는 것은 국민에게 굴욕감만 준다. 정부는 피해자들의 의견 수렴을 하고 ‘제3자 변제안’을 설득시키는 과정을 선행했어야 했다. 그래야 독일 과거사 정리 단체가 천명했듯이 피해자의 기억과 가해자의 책임이라는 필요 충분 조건이 진정한 화해와 치유로 이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강제 징용 배상 문제’를 양보했는데 일본은 나머지 빈잔을 채웠는가? 일본 정부 각료들이 아직도 아시아 국가들의 비난에도, 전쟁 범죄를 반성하기는커녕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하고 있고, 자국의 교과서에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표기하며 일본 영토라고 아직도 억지 주장을 하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만행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비를 하고 있는가? 놀랍게도 국정 교과서에 한국 전쟁이 북한의 남침이라는 사실과 한강의 기적을 이룬 내용이 삭제되어 있고, 자유 민주주의라는 용어를 지우고 그냥 민주주의란 용어를 교과서에 적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는데도, 국회의원들은 상대 정당 비난만 일삼고, 돈 봉투 논란으로 민생 정치는 뒷전인 부끄러운 모습만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자부심은 한국전쟁을 이겨내고 경제 건설을 했으며,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자유 민주주의를 지킨 사실에 있다. 지금부터라도 후세에게 선조들의 업적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조국에 대한 자부심을 길러주는 ‘나라 바로 세우기’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그래야 독도를 지킬 수 있고, 나라를 지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