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현직 경찰이 고독사 관련 책 낸 이유
“지금까지의 고독사 대책은 책임 면피용 정책이었다”
지난해 6월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코너에 고독사 관련해서 인터넷용 기사를 쓴 직후였다. 독자로부터 메일을 몇 개 받았는데 그중 하나가 그가 보낸 것이었다. “나는 고독사 문제에 관심이 많은 현직 경찰이다. 그동안 나온 대부분의 기사는 고독사를 단편적으로만 다뤄서 아쉬웠다. 고독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데 만나서 차나 한잔하자”는 내용이었다. 독자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먼저 만나자고 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고독사에 관심이 많은 경찰’이라는 대목에 이끌려 바로 답장을 보냈다.
■우리 구에는 고독사가 없어요
부산 영도경찰서 지능범죄수사팀 권종호 경위(56)였다. 권 경위는 처음 만나던 날 직접 만든 보고서를 들고나왔다. 부산시가 파악하고 있는 고독사 현황은 현실과 괴리가 크다는 내용이었다. 부산 모 구의 예를 들면 고독사 예방에 한 해 수십억 원의 예산이 투입되면서 최근 3년간 공식적으로 2건의 고독사가 발생했다. 하지만 특수청소업체들은 해당 구에서 한 해 수십 건의 고독사를 처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권 경위는 “고독사 대책이라는 게 고독사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책임 면피용 정책이지, 편안하게 살다가 죽을 권리가 보장되는 실질적인 예방책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그는 고독사라는 단어조차 사람들이 잘 모르던 2012년부터 주민센터와 구청, 시청을 쫓아 다니면서 고독사라는 재앙을 알리고 다녔다고 했다. 아주 특이한 경찰이었다.
지난해 10월 권 경위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영도구에서 노인 고독사가 하루에 2건이나 발생했는데, 이번에는 제대로 보도해 달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사회부 영도 출입기자에게 바로 제보를 했고, ‘영도구 연이은 외로운 죽음’이라는 제목으로 10월 20일 자 <부산일보>에 기사가 실렸다. 그걸로 할 일은 끝났지만 권 경위와 함께 현장 한 곳으로 동행했다. 고인의 시신은 이미 치워졌지만, 말로만 듣던 고독사 현장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다. 집안으로 들어서니 현관문 옆에는 고지서 더미가 수북했다. 그보다 먼저 집안 전체에서 퀴퀴하다는 단어로는 설명이 부족한 묘한 냄새가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고독사의 흔적이었다. 집 안 가득한 쓰레기 더미 속에서 배낭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배낭 속에는 고인이 어떤 분인지 짐작하게 해 주는 서류가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 스승의 날에 받은 교육부 장관 표창장과 얼마 전까지 넣은 지원서류에 마음이 착잡해졌다. 부인과 자녀가 있다고 들었는데 무슨 이유로 가족이 해체된 것일까. 그때 권 경위가 그만 나가자고 재촉했다. 안쪽의 사정을 알리 없는 젊은 관광객 한 무리가 지나갔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얇은 문 하나 사이라는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여보, 사랑해 조금만 기다려
권 경위는 경찰로 30년 넘게 일하며 100건이 넘는 고독사 현장에 출동했다. 그가 겪은 사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두 건이다. 첫 번째는 너무 사이가 좋았던 노부부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일주일 만에 할아버지가 따라가셨다. 달력에는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여보, 사랑해 조금만 기다려 곧 갈게”라고 적혀 있었다. 농 밑에 놓인 흰 봉투를 열었더니 “집을 치워 주시는 분께 미안한 마음에 식삿값을 남깁니다. 집사람 옷을 한 벌 준비했는데 수고스럽지만 태워 주시기 바랍니다”라는 내용의 편지와 돈이 들어 있었다. 권 경위는 이날 많이 울었다고 했다. 두 번째는 고시텔에서 있었던 청년 고독사다. “20년 혼자 살아 온 무연고자입니다. 은행에 돈이 있으니 화장 처리 비용으로 사용해 주세요. 경찰관님! 저는 혼자 살아 혼자 가는 것이니 제발! 오지도 않을 사람들에게 연락하는 것은 절대! 하지 마세요. 조용히 떠나갈 수 있게 해 주세요.” 서른여덟 살 청년이 남긴 글이 가슴팍을 후빈다. 그는 무연고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고인이 남긴 돈과 보증금만 가지고 끝내 시신 인수를 포기했다.
권 경위는 오해를 정말 많이 받았다고 했다. 공식적으로는 고독사 발생이 0건인데, 누군가가 수십 건이 발생했다고 떠들고 다니면 불편하기 십상이다.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 취급을 당했다. 가장 큰 문제는 고독사의 정의가 애매하다는 데 있는 것 같다. 2021년부터 시행된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은 고독사를 ‘일정한 시간이 지난 후에 발견되는 죽음’으로 정의한다. 지자체 담당자에 따라 일정한 시간은 5일도 7일도 된다. 망자가 고독하게 죽지 않았기에 고독사가 아니라고 우기는 담당자도 있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고독사는 도쿄 24시간, 그 외 지역은 48~72시간으로 규정하고 있다. 권 경위가 생각하는 고독사는 사망 후 72시간이 지나 발견된 죽음이다. 무엇보다 명확한 고독사 정의가 시급하다.
■청년 은둔 생활자를 밖으로
권 경위는 뒤늦게 고백을 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너무 지쳐 있을 때 <부산일보>에 난 기사를 읽고,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고독사 예방은 그가 맡은 업무가 아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지도 않은 일개 경찰의 말이 씨가 먹힐 리가 없다. ‘고독사’를 다룬 책은 국내에 전무한 상태였다. “권 경위는 이미 고독사 전문가다. 당신이 고독사에 관한 책을 쓰면 그때는 사람들이 귀 기울여 줄 것”이라고 조언했다. 불과 몇 개월만에 책을 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난 2월 <고독사는 사회적 타살입니다>가 깜짝 출간됐다. 이 책은 현직 경찰관의 눈으로 바라본 고독사 현장을 담았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어 언론 인터뷰가 이어지는 중이다. 보건복지부, 한국사회보장정보원, 한국언론진흥재단 등에서 고독사 관련 강의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 고독사 전문가 권종호 작가를 2일 새삼스럽게(?) 다시 만나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고독사 관련 정책을 수립하는 기관에서 먼저 강의를 요청했다니 반가운 일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강의는 현직 기자들이 들었다. 이런 곳에서 강의한 뒤에는 어떤 질문이 들어오는가.
▲청년 고독사에 대한 관심이 많다. 청년 은둔 생활자를 밖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물어본다. 경찰, 구청, 자살센터에서 왔다고 하면 대개 거부감을 갖는다. 기관에서도 자신들을 쫓아내니 더 이상 해 줄 것이 없다고 한다. 어르신들을 보내 보니 세 번 만에 집에서 같이 라면을 끓여 먹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구청 직원은 바빠서 이야기를 못 들어주고 사진만 찍고 가도 자식을 둔 어르신들은 다르다.
-이 책에는 고독사를 예방하기 위한 몇 가지 대책이 나와 있다. 그중에서도 ‘생전계약’ 제안이 흥미롭게 느껴졌는데 소개해 달라.
▲무연사회에서는 가족의 몫이었던 요양간호, 장례식 등을 오롯이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일본처럼 정부로부터 위임받은 단체가 생전계약을 맺고 생전사무와 사후사무를 나눠 돕도록 하자는 것이다. 몇년 전에 생전계약으로 사후 뒤처리를 위탁받는 안심장례서비스를 구상해서 전단지를 돌린 적이 있는데 많은 문의 전화를 받았다. “치매에 걸린 아내가 걱정이다. 내가 죽으면 집을 팔아서 아내가 시설에서 생활하게 도와 달라”는 식이었다. 나는 힘에 부쳐 이 활동을 중단했지만 정부 차원에서 생전계약이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고독사를 막는 데는 AI나 로봇 같은 기술보다 사람이 더 중요하다. 구청에서 집계한 고독사 건수와 경찰이 파악한 건수가 다른 이유는 현장 때문이다. 경찰은 현장에 가지만 구청에서는 안 나온다. 담당자가 바뀔 때마다 “고독사 현장을 함께 가서 보자. 현장을 보면 생각이 달라진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아무도 현장에 오지 않았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안타까운 마음만 가지고 살기에는 그동안 본 것이 너무 끔찍하고 애잔했다. 사람들이 고독사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 나는 성공한 것이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