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A 컬렉션, 미술관 보고(寶庫) 들여다보기] 217. 소외된 이들의 일상을 포착하는 김원 ‘공장후경’
파춘 김원(1921~2009)은 ‘파춘 김원작품기’라는 제목으로 13권의 스크랩북을 만들었다. 1955년부터 작고하기 전까지의 작업을 모두 사진으로 남겼을 뿐만 아니라 전시회 자료와 현장 사진, 관련 기사까지 꼼꼼히 정리해두었다. 김원은 함경남도 정평에서 출생했으나 1951년 부산에 정착해 계속 부산에서 활동했다. 그렇기에 이 스크랩북은 김원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부산 미술사를 연구하는 데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
1967년 미술평론가 김강석이 김원을 일컬어 ‘파이어니어’라고 부를 정도로 그의 작품세계는 파격적으로 변화했다. 구상에서 추상, 오브제를 활용한 팝아트까지, 김원은 늘 새로운 작업에 몰두했다. 1950년대는 ‘구상작업’의 시기로, 피란 끝에 정착하게 된 부산의 전후 모습을 서정적으로 그려낸 시기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소장품인 ‘공장후경’(1956)은 이때 그려진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부산에는 도시화가 급격하게 진행됐다. 전쟁을 겪으며 1차 산업에 종사하던 농어민, 전국에서 몰려온 피란민, 귀환 동포가 도시로 쏟아졌다. 일자리도, 살 집도 없었던 도시 난민들은 부산항을 중심으로 산지를 따라 올라가 판자촌을 형성했다.
당시 식품, 화학, 섬유 분야에는 여성 노동자가 많이 종사했는데 특히 방직공장의 경우 입사하기 쉽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노동조건이 열악했지만 여공이 되는 것은 봉건사회에서 벗어나 경제적, 사회적 독립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
‘공장후경’은 공장 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여공이 되지 못한 여인들은 공장 뒤편에서 노점상으로 생계를 잇고 있다. 퇴근하는 여공들을 위해 차린 알록달록한 노점 옆에 아기를 안은 여인의 모습이 고단해 보인다. 공장의 벽은 화면을 가득 채우는 푸른 빛을 띠며, 마치 교도소의 벽처럼 견고하고 폐쇄적으로 보인다. 그나마 한 쪽 벽에 가득히, 여인들의 어깨에 내려앉은 햇볕이 전쟁 후의 어려운 삶을 달래주는 것 같다. 소외된 이들의 일상을 포착해 애틋하게 그려낸 작가의 따스한 시선을 엿볼 수 있다.
서정원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