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 본존불, 깨달음 이룬 부처의 환희 표현한 것”
일향 강우방의 예술 혁명일지/강우방
사천왕상, 동아시아 조각의 백미
4개 중 북방 다문천상 없어
신라 김씨 ‘흉노 후예’ 가능성 열어
“인류 문양은 신적인 것 표현”
<일향 강우방의 예술 혁명일지>는 일가(一家)를 이룬 미술사학자 강우방의 자전적 기록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창조해온 일체의 조형예술품과 공간적으로 세계 모든 나라에 남아있는 조형예술품을 ‘영기화생론(靈氣化生論)’이란 독자적 이론으로 해독”하기에 이른 여정을 담았다. 원래 글을 잘 쓰기로 이름난 저자일 뿐 아니라 그가 이른 경지 자체가 상당한 흡입력이 있다.
미술사학에 대한 그만의 깊이 있는 독특한 입장은 설득력 있고 매혹적이다. 통상 석굴암을 황금비례로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황금비례’이지만 동양에서는 ‘1:루트2’의 비례를 썼다는 것이다. 석굴암 본존불의 비밀은 뭘까. 그는 부처가 새벽의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이룬 그 순간 환희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라고 본다. 지금은 없으나 그 옛날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보드가야 마하보리사’에 있던 여래좌상을 모델 삼았다는 것이다. 신라인들은 7세기 전반 현장법사가 <대당서역기>에 기록한 그 좌상의 크기 도상 향방을 그대로 따라 석굴암 본존불을 조각했다는 것이다.
당나라를 물리친 문무왕 때 창건한 경주 사천왕사지 사천왕상의 복원·분석도 흥미롭다. 30여 년 세월을 거쳐 2012년 발굴을 마친 뒤 사천왕상 조각들을 모두 수습해 복원이 완료됐다고 한다. 그런데 사천왕상이 4개가 아니라 3개뿐이다. 북방 다문천상이 없는 것이다. 그것은 통일신라가 새로운 김씨 왕국의 탄생이라는 점과 연결되는데, 신라 김씨의 시조 김알지가 저 멀리 북방 흉노의 후예라는 설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천왕상의 상징에서 ‘흉노의 북방’을 열어놓으면서 북방 다문천상을 조성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는 독특한 채색분석법을 사용하는데 유물 2만 점을 그렇게 분석했다고 한다. 걸출한 예술가 양지 스님이 조각한 사천왕상 테두리에는 용 2마리와 마카라(바다생물) 2마리와 보주(寶珠)가 있고, 천의 휘날리는 사천왕이 앉은 화면 전체가 기운생동하고 있다고 한다. 이 사천왕상은 동아시아 사천왕상 가운데 가장 뛰어난 백미라고 한다. 그는 신라 혹은 통일신라 작품이라는 반가사유상도 다르게 본다. 하나는 백제 작품이고, 다른 하나는 고구려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기화생론은 뭔가. 그는 세계의 일체 문양은 신(神)을 표현한 것이라고 말한다. 불상 조각의 광배를 흔히 불꽃무늬라고 하는데 그것은 불꽃처럼 보이지만 ‘여래로부터 발산하는 강력한 기운’을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고구려 벽화의 다양한 문양을 수십 년에 걸쳐 분석하면서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슬람 문양, 그리스 문양, 그 모든 인류의 문양은 신적인 것을 표현하는 문양이라는 것이다. 이 조형언어는 문자언어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문자언어가 5000년 역사를 지녔다면 조형언어는 구석기시대부터 내려오는 수십만 년 된 것이다.
그는 사찰 법당의 공포도 역동적 기운의 영기문으로 풀어낸다. 신적인 기운을 살아서 꿈틀거리는 공포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문양 국제심포지엄도 열었다. 문양이 신이기 때문이다. 그는 ‘귀면와(鬼面瓦)’는 귀신 얼굴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용의 얼굴을 정면에서 그린 ‘용면와(龍面瓦)’라고 말하는 대목은 무릎을 치게 만든다. 그는 성덕대왕신종의 용을 보고 기와에서 귀신이 아닌 용의 얼굴을 봤다고 한다.
서양미술은 그리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들 한다. 서양 르네상스는 그리스 정신과 예술의 부활이라고 한다. 그가 보기에 그것은 협소하다. 원래 인류 예술, 세계 예술은 하나라는 것이다. 신적인 것을 표현한 그 원리를 따질 때, 특히 문양은 동서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당초문, 덩굴무늬, 중국의 만초문, 그리스 신전의 문양, 이슬람 아라베스크 등 인류의 모든 예술은 신의 기운을 표현했다는 영기문으로 풀어낼 수 있다고 한다. 강우방 지음/불광출판사/376쪽/3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