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부산항 제1부두가 묻는다
문학평론가
엑스포 유치 예정지 북항의 역사성 간직
품고 키우는 어미의 깊은 마음 같은 존재
세계유산 등재 노력, 개발 논리 앞 ‘시련’
원도심 부활은 1부두 보존에서부터 출발
2022년 9월 3일부터 11월 6일까지 열린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는 ‘물결 위 우리’였다. 전시 장소들 중에는 부산항 제1부두 창고도 포함되었다. ‘물결 위 우리’라는 슬로건은 이미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필자가 가장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부산항 제1부두가 지난 100여 년간 묵묵히 견뎠을 신산고초였다. 떠나보내고, 받아들이고, 껴안으며, 마지못해 등을 떠미는 어미의 깊은 마음속 같은 존재가 바로 1부두이다. 숱한 시인들이 1부두를 노래했다. 그 속에는 사람들의 애환과 눈물이 서려 있지만, 그 눈물과 애환을 말없이 받아 준 1부두의 장소성을 빼고 읽어 내기란 어렵다.
그 역사를 되짚어 보자. 1911년 최초로 준공된 이후 1961년 공동어시장이 들어서서 1973년 이전할 때까지 각종 어류를 유통하고 제공했다. 1992년 개축 공사를 거치고 2015년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 3·4부두 일대에 신축 개장하기까지 국제무역항과 아울러 국제여객터미널 기능을 떠맡았다. 한편 부산시는 2015년 ‘피란수도 부산’이라는 주제로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로드맵을 발표했다. 이러한 배경에는 도시개발로 급속히 사라지고 있는 근대유산에 대한 재조명과 피란수도 부산의 역사적인 가치를 재인식하려는 뜻이 놓여 있었다. 2018년에는 해양수산부와 부산시, 부산항만공사의 오랜 협의가 진행된 가운데, 민관협의체이자 전문가의 자문·의결기구인 부산항북항통합개발추진협의회에서 이끌어 낸 원형 보존 의결에 따라 2019년 북항재개발 사업계획 변경이 고시되기에 이르렀다. ‘피란수도 문화유산 보존에 따른 도로선형 변경’이 핵심이었다.
현재 부산항 제1부두를 비롯해 모두 9곳의 피란수도 부산 유산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하고 있다. 지난해 말 문화재청에서 열린 문화재위원회 심의에서의 극적인 가결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가 최종 결정되었다. 현재 1부두 소유자인 부산항만공사가 소재지 관할 지자체인 중구에 부산시 등록문화재 등록 신청을 한 상태이다. 1부두는 북항재개발사업 과정에서 매립될 위기에 처했지만, 부산시와 해양수산부 및 부산항만공사 사이에 유산 보존을 위한 오랜 협의를 통해 부두의 원형을 보존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하지만 관할 지자체인 중구청과 중구의회는 1부두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반대하고 나섰다. 사실 지정문화재와 달리 등록문화재는 주변 일대의 개발 제한이 없는데도 상권이 침체된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다. 중구의회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예를 든 부산근현대역사관의 경우 등록문화재가 아니라 지정문화재이다.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이 최근 엑스포 유치 예정지인 북항 일대를 다녀갔다. 부산시뿐만 아니라 정부까지 적극 나서서 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한 홍보 전략에 힘을 쏟고 있다. 왜 이렇게까지 박람회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지는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다. 향후 부산 발전과 번영의 시금석이자 놓칠 수 없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항 제1부두는 탄생부터 100여 년 동안 한국 근현대사의 격랑을 지켜봤다. 그런데 최초의 근대 항만기능을 담당했던 1부두가 지금 세계유산 반대 앞에서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지만 향후 최종적으로 세계유산에 지정되려면 거쳐야 할 행정절차가 산적하다.
세계유산이 된다는 말은 우리 부산항 제1부두가 전 세계인들에게도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가치를 충분히 전달할 수 있는 장소라는 뜻이다. 부산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의 경사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세계유산이 된 1부두를 보러 올 것이다. 중구는 원도심 재건과 침체된 상권 부활을 핑계로 1부두 공간에 주민들을 위한 시설을 갖춰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럴싸한 논리지만 한편으로는 속 보이는 셈법이 아닐 수 없다.
2016년부터 부산 동구와 시작된 북항 재개발지역 행정구역 관할권 분쟁은 결국 2021년 행정안전부 중앙분쟁조정위원회가 중구 측 제안에 손을 들어줌으로써 오페라하우스 부지를 포함해 IT·영상·전시지구 4곳 중 2곳이 중구 관할로 넘어가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북항 1단계 재개발사업의 기반시설 조성이 끝남에 따라 중구는 언제든 중구 발전을 위한 모색을 넓힐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게 된 셈이다.
아울러 ‘원도심’ 또한 실은 부산항 제1부두의 탄생을 비롯한 중구 일대의 매립이 완료된 시점부터 형성되었다는 아이러니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원도심 부활은 결국 1부두가 지난 100여 년간 수행했던 묵묵한 얼굴에 지움의 붓질을 하지 않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부산항 제1부두가 아마도 우리들에게 묻고 싶은 게 이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