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천마, 다시 만나다
경주 115호 고분에 천마총(天馬塚)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까닭은, 두루 알려진 대로, 그 안에서 천마도가 나왔기 때문이다. 천마총에선 금관, 유리구슬 등 무려 1만 점이 넘는 국보급 유물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천마총이라 이름한 건 다른 유물을 압도할 만치 천마도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익히 알고 있는 천마총 천마도는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말다래(흙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말의 배 쪽에 대는 덮개)에 그려진 것이다. 구름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듯한 천마의 모습이 더없이 신령스럽다. 그 느낌이 워낙 강렬해 한 번 본 사람은 좀체 잊지 못한다.
이 천마도를 두고 한때 논란이 일었다. 천마가 아니라 기린이라는 주장이 나온 것이다. 중국에서 기린은 성인을 상징하는 동물로 ‘말의 몸, 소의 꼬리, 솟아난 뿔’로 묘사된다. 그런데 천마도의 천마 머리엔 뿔 비슷한 게 있다. 그래서 의견이 분분했는데, 2015년 문화재청이 “천마가 맞다”고 결론 내렸다. 이유가 있다.
천마총에서 나온 천마도는 하나가 더 있다. 1973년 천마총을 발굴할 때 대나무 재질에 금동을 입힌 말다래가 먼저 발견됐다. 단순한 말다래로 봤는데, 2014년 국립경주박물관이 새로운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현미경 관찰을 통해 금동판을 오려 붙여 만든 천마 그림을 확인한 것이다. 그렇다면 자작나무 말다래의 그림도 천마라는 게 자연스러운 귀결인 셈이다.
그와는 별도로, 천마총보다 약간 앞선 5세기 초에 조성된 평안남도 덕흥리 고구려 고분에서 천마 그림이 발견됐다. 1976년 발굴된 덕흥리 고분의 천마는 머리에 뿔처럼 보이는 게 있어 천마총의 천마와 유사한데, 그림 앞에 ‘天馬之象’이라는 글자가 확연하다. 이 또한 천마총이 천마총이어야 하는 이유가 됐다.
기실 스키타이를 비롯해 고구려와 신라에 이르기까지 북방 기마민족에게 천마는 흠숭의 대상이었다. 하늘과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성스러운 동물로 여겼던 것이다. 삼국유사는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알에서 태어났고 백마가 그 알을 데려왔다고 기술한다. 이때 백마는 곧 천마인 것이다.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해 국립경주박물관이 4일부터 ‘천마, 다시 만나다’ 특별전을 열고 있다. 천마총 천마도 실물과 함께 금령총 등 다른 고분에서 나온 천마 유물을 볼 수 있다. 전시는 7월 16일까지 계속된다고 하니, 한 번쯤 찾아 천마의 신령한 기운을 받아 오는 것도 좋겠다 싶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