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 재발 막을 ‘시선유도봉 설치’ 시작부터 삐걱
영도구 청동초등 앞 설치 계획
“무턱대고 주차 막으면 어쩌나”
주민 거센 반발에 일단 중단
구 “이번 주 주민과 다시 논의”
CCTV 설치도 주민 저항 예상
잇단 안전대책 흐지부지 우려
부산 영도구 등굣길 참사(부산일보 5월 1일 자 1면 등 보도) 이후 어린이보호구역의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이 쏟아지지만, 막상 준비 과정에 들어간 대책은 초기부터 주민 반발에 부딪혀 삐걱대고 있다. 사고 직후 나온 안전 대책은 통상 시간이 지날수록 동력을 잃기 때문에 이번 참사 대책도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7일 영도구청에 따르면, 구청은 지난 4일 청동초등학교 어린이보호구역 내 시선유도봉 설치 작업을 진행하다 주민 반발로 중단했다. 지난 2일 작업을 시작한 지 사흘 만이었다.
당초 구청은 청동초등 후문 쪽 500m 구간의 도로 중앙에 원통형 플라스틱 시선유도봉을 설치할 계획이었다. 시선유도봉이 들어서면 주행 공간이 통제돼 갓길에 차량을 주정차하기 어려워지는 효과를 낸다. 이후 청동초등 인근에 CCTV를 설치해 참사 원인이 된 불법 주정차를 근본적으로 막겠다는 게 구청의 구상이었다.
시선유도봉 공사가 시작되자 상당한 민원이 제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청의 안전 대책이 주차난을 심화시킨다는 게 이유였다.
영도구 등굣길 참사 여파가 상당해서 공사를 강행할 수도 있었지만 구청은 일단 주민과 협의 과정을 거치는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인근 공영·사설주차장 가릴 것 없이 모두 포화 상태인 만큼 공영주차장 조성 등의 대책 없이 불법 주정차 단속만 강화한다는 민원도 적잖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선유도봉 설치가 완료된 이후 불법 주정차 단속용 CCTV가 본격적으로 추진되면 더 거센 반발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동네 주민 정 모 씨는 “불법 주정차 단속의 취지는 이해한다”면서도 “대안 없이 무턱대고 주차를 막으면 차는 머리에 이고 있으란 말이냐”라고 말했다.
구청은 불법 주정차 단속 취지에 주민들이 공감하는 만큼 계속해서 협조를 구하면서 동시에 공영주차장 조성 등의 대안을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공영주차장 조성으로 주민을 설득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공영주차장은 부지 매입부터 예산 확보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중장기 대책이다 보니 주민 협조를 구하는 게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참사 첫 대책이 시작부터 난항을 겪는 걸 감안할 때 나머지 대책도 비슷한 과정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부산시는 앞서 지난 2일 안전한 통학로 조성을 위해 불법 주정차 차량에 대한 과태료 상향 검토와 단속용 CCTV 설치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지자체가 어린이보호구역 내 불법 주정차 단속을 강하게 실시하지 못하는 것은 만성적인 주차난 때문이다. 주차 인프라 확충 방안까지 포함된 종합계획이 나오지 않는 이상 단속 강화는 필연적으로 주민 반발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경찰은 불법 주정차가 근절될 때까지 등하교 시간에 어린이보호구역에 인력을 배치해 교통 지도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단속용 CCTV 설치 등이 미뤄져 현장 인력 배치가 장기화될 경우 상당한 업무 부담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보행자용 안전펜스를 강도가 센 차량용 펜스로 교체하는 대책 역시 인도를 좁아지게 하거나 거리 미관을 해칠 수도 있어 민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영도구청 관계자는 “이번 주 중 다시 주민들에게 사업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며 “불법 주정차 CCTV 설치도 당초 계획했던 9월에서 7월로 앞당겨 현재 업체와 논의하고 있다. 조속히 통학로 안전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