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정매매 알았다면 피해자 아닌 공범”
SG증권발 폭락 손실 본 투자자
주가조작 이득 예상했다면 처벌
투자자 자기 책임 원칙도 저버려
주식시장을 연일 뒤흔들고 있는 SG증권발 폭락 사태로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피해를 주장하지만 이들 역시 ‘공범’으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들의 공범 여부는 H투자컨설팅업체 라덕연 대표의 시세 조작 사실을 미리 인지하고 있었는지 여부에 달린 것으로 보고 있다.
7일 금융투자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라 대표를 주축으로 한 주가조작 의심 세력은 시중 유통량이 적은 종목들을 장기간에 걸쳐 사들이는 방식으로 주가를 인위적으로 부양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들은 투자자를 모집한 뒤 투자자에게서 휴대전화와 신분증을 넘겨받아 증권사 계좌를 개설한 후 사전에 정해진 시점·가격에 주식을 사고파는 '통정매매'를 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라 대표를 믿고 투자한 이는 1000여 명이다. 가수 임창정·박혜경 씨 등 연예인과 의사, 변호사 등이 포함됐다.
이런 방식으로 주가를 끌어올린 것으로 의심되는 종목들은 지난달 24일부터 차액결제거래(CFD) 반대매매 등에 따라 폭락했고, 라 대표에게 투자한 이들은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다만 라 대표의 말을 믿고 투자한 모든 이를 피해자로 볼 수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법무법인 우리 김정철 변호사는 “주가조작과 관련해선 순수 피해자로 보기 어렵다. 주가조작이 이뤄져 큰 이득을 취할 것이라는 인식하에 투자했다면 인식의 정도에 따라서는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승재현 선임연구위원 역시 “통정매매가 있었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다면 피해자가 아니라 공범이 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라 대표의 말을 믿고 돈을 맡긴 투자자들이 투자의 ‘자기 책임’ 원칙을 저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업에 전문 지식이 있는 증권사 애널리스트가 작성한 보고서에서는 대개 면책 고지가 붙어 있다. 모든 투자는 전적으로 투자자 판단에 따라 이뤄져야 하고 그 책임도 투자자가 져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대규모 주가조작 의혹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사태의 진원지로 지목된 차액결제거래(CFD)에 대한 집중 대책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위원회는 금융감독원 등과 함께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시 과징금을 이익의 배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은 자본시장법 개정안 입법을 조속히 추진하기로 했다. 금융위는 또 회사 내부자의 주식 매도 계획을 사전에 공시하는 제도 도입도 추진하고, 사태의 이상 징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한국거래소의 감시 기능에 대한 보완 작업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은 주가조작 등 증권 범죄에 가담할 경우 최대 10년간 증권 계좌 개설과 주식거래를 제한하고 금융·상장회사의 임원으로 취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자본시장법을 다음 주 대표 발의한다. 해당 법안은 미공개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거래, 시장 질서 교란 행위, 무차입 공매도 등에 가담한 사람에게는 자본시장 내 금융투자상품의 신규 거래 및 계좌 개설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김진호 기자 rpl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