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우크라이나에 무기 지원, 그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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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혁 유라시아교육원 이사장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

윤 대통령 “살상 무기 공급” 언급
우리 안보에 직접적 위협 우려돼

근래 우크라의 친미 편향 외교
지금의 국난 초래한 도화선 돼

기존 한·미 포괄동맹 중시하되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지 말아야

한·미 정상회담이 막을 내렸다. 안보 분야 등에서 거뒀다는 일정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뭔가 뒤가 개운하지 않다. ‘뜨거운 감자’를 계속 손에 쥐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저런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방미를 앞두고 외신 인터뷰에서 “앞으로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직접 지원할 수 있다”고 밝혔고, 그 파장이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과 대만해협을 염두에 둔 ‘힘에 의한 현상변경 반대’는 일반적인 원칙론인 데다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 2022년 9월의 유엔총회 기조연설과 11월의 프놈펜 아세안정상회의 등에서도 천명되어 왔기에 특별히 새로운 게 없다고 하자. 오히려 중국 측이 이를 심하게 문제 삼아서 “심각한 외교적 결례” “말참견” “불바다” 운운하는 것 자체가 우리 주권에 대한 심각한 도전일 수 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직접 공급하는 문제는 차원이 다르다. 이건 선을 넘은 편향적 판단이며, 섶을 지고 불에 들어가려는 위험한 도박이라고 본다. 이 어긋난 확신이 어떤 식으로든 현실화할 경우, 이는 우리의 안보에 직접적인 위협이 될 것이고 북한 문제 해결이나 세계 평화에도 도움이 안 될 것이다. 일단 러시아 측 반발이 도를 넘고 있다. “전쟁 개입” “내정간섭” “우리도 북한에 첨단무기를 줄 수 있다” 등에서 더 나아가 “러시아 내에 있는 한국 재산 동결” “북한에 핵 부품 제공 용의” 등 으름장이 장난이 아니다. 분위기가 얼마나 살벌하면 상트페테르부르크 한인회 등 현지 5개 교민단체들마저 “우크라이나에 살상 무기를 지원하는 걸 반대한다”는 특별성명까지 냈겠는가. 정치와 국제관계는 레토릭(rhetoric)이다. 일단 말을 조심하고 삼가야 한다. 그리고 외교는 균형외교와 등거리외교가 답이다. 러시아도 4개의 한반도 관련 국가연구소 등을 중심으로 언제나 우리 남·북한을 그렇게 다룬다. 하물며 상대적으로 약한 입장인 우리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외교를 잘못하여 한쪽으로 무게추가 지나치게 기울 때 강대국 사이에 낀 나라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는, 멀리 갈 것도 없이 지금의 우크라이나가 이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1991년 12월 소련에서 독립한 이후 그동안 7명의 대통령을 선출했다. 초대 대통령 크라우추크(1991~1994)와 2대 쿠치마(1999~2005) 때는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그런대로 균형외교를 잘했다. 특히 쿠치마는 서방과 러시아를 동등하게 우방으로 다루어 1997년 5월 31일 러시아와 ‘러시아 연방과 우크라이나 간의 우호와 협력, 파트너십에 관한 조약’을 체결하고, 이보다 한 달여 뒤인 1997년 7월 9일에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도 ‘우크라이나와 나토의 특별 파트너십’을 맺는다. 이 균형외교 덕에 쿠치마는 역대 우크라이나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재선에 성공했고, 체제 전환의 혼란 속에서도 나라를 평화롭게 유지하였다. 제3대 대통령 유센코(2005~2010)는 친미, 제4대 야누코비치(2010~2014)는 친러 노선을 걸으며 소요가 끊이지 않았으나, 정권별로 좌우 지그재그 행보를 보이며 나라를 거덜 내지는 않았다.

제5대 투르치노프는 3개월 남짓의 임시 대통령이고, 문제는 6대 대통령 포로센코(2014~2019)와 지금의 7대 대통령 젤렌스키(2019~)다. 이들은 전임자들과 달리 서방 쪽으로 확 기우는 친미 급진 노선을 택했다. 그래도 포로센코 때는 좀 나았다. 2014년 3월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 직후에 대통령으로 취임한 그는 격하게 반러 감정을 토로하면서도 임기 내내 러시아와 뭍밑으로 대화했다. “크림과 돈바스를 다시 돌려받기 전에는 러시아와 어떠한 협상도 타협도 없을 것”이라는 당초의 공약도 극단적으로 밀어붙이진 않았다. 다만 대통령 임기를 석 달 남긴 2019년 2월 헌법 개정을 통해 유럽연합(EU)과 나토 가입을 법적으로 분명히 했고, 이것이 지금의 국난을 부른 도화선이 되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에게 유럽연합과 나토 정회원증을 줄 ‘떡 줄 사람들’은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았는데, 젤렌스키 정부는 이 흐름에 지나치게 고무되어 더욱 세게 서방 편향의 가속 페달을 밟아 버렸다. 우크라이나 위정자들의 이처럼 기운 행보가 미국의 대러 봉쇄 음모, 신냉전, 푸틴의 야욕, ‘두긴주의’로 대표되는 러시아 내 극우 국수주의 세력의 준동 등과 맞물려 지금의 불행한 사태가 터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한마디로, 한·미 포괄동맹을 중시하되 배가 전복될 정도로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인도적 지원은 강화해야 한다. 그러나 사태가 악화되어도 직접적인 살상 무기 지원은 안 된다. 멀리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옛 교훈을 가져올 것도 없이, 오늘의 우크라이나가 타산지석이다. 때로는 느림과 전략적 모호성이 국익과 세계평화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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