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춤추는 사람들(영상)
수석논설위원
줄리안 오피는 몰라도 그가 그린 ‘걷는 사람’은 다들 한 번쯤 보았을 성싶다. 굵고 뚜렷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감, 디테일이 생략된 단순화된 표현이 특징이다. 교통 표지판이나 만화처럼 단순한데도 참 잘 그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영국 출신의 오피는 현대 팝아트의 거장으로 불린다. 그의 작품을 볼 때면 “저렇게 열심히 걸으니 살이 찌지 않는구나”라고 엉뚱한 생각을 한다. 오피가 2018년에 이어 5년 만에 부산 전시로 돌아왔다. 수영구 망미동 F1963 국제갤러리 부산점과 석천홀에서 열리고 있는 이번 전시는 그의 변신을 목격해서 좋았다.
부산 사람들의 걷는 모습을 반영한 작품도 등장했다. 오피는 직접 사진작가에게 의뢰해 해운대와 센텀시티를 걷는 행인들의 모습을 찍은 사진 1000여 장을 영국에서 받았다. 거기에 자신의 영감을 반영해 이미지와 조각 작품으로 완성했다는 것이다. 이전에 같은 방식으로 서울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만들기도 했다. 당시 오피는 신사동을 배경으로 한 사진을 받았는데, 사진 속 인물들이 다들 굉장히 옷을 잘 갖추어 입고 또 화려해서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부산에 온 오피가 실제로 만난 부산 사람들의 인상은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이번 전시의 가장 큰 특징은 영상 작품이 모두 춤을 추는 사람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걷는 사람’의 작가가 어느 날 갑자기 ‘춤추는 사람’으로 돌변하니 살짝 당황스럽다. 오피는 “코로나로 봉쇄된 기간에 외로웠다. 이제 코로나가 끝나 가니 작품을 통해 아주 빠르고 동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틱톡이나 유튜브에서 셔플 댄스 영상을 보고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오피는 댄서로 활동 중인 딸과 함께 춤을 고안하고, 이미지로 표현하고, 사운드 요소를 포함해 작품에 생동감을 불어넣었다고 한다.
셔플 댄스(Shuffle Dance)는 80년대 외국의 클럽에서 시작되어 2010년대 국내에서도 유행했다. 셔플은 발을 질질 끈다는 뜻이다. 제자리에서 달리듯이 단순한 동작을 빠르게 반복해 강한 중독성을 갖고 있다. 80년대 유행했던 토끼춤과도 비슷하다. 틱톡 같은 숏폼 콘텐츠가 뜨면서 누구나 손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셔플 댄스가 큰 인기다. K팝 가수가 신곡을 발매하면 SNS에서 댄스 챌린지에 도전하는 모습도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58년 개띠 오피의 작품을 보고 나면 어느새 셔플 댄스를 따라 하는 자신을 만나게 된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