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젊은 영화인 열정·김동호의 뚝심…아시아 최고 영화제 꽃피우다[부산피디아]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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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피디아] (3) BIFF와 김동호

문화 불모지에 영화 주춧돌 놓아
인적 네트워크로 1회 예산 마련
해운대→남포동 BIFF 일정 맞추려
오토바이 타고 부산 동서 강행군
‘영화의전당 건립’ 성장 기폭제로


가을이 되면 부산에 수많은 ‘별’이 쏟아진다. 아시아 최대 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열리기 때문이다. 레드카펫을 장식하는 배우들로 축제는 시작하고, 거장의 신작과 신인 감독의 실험 정신 넘치는 작품 등 다양한 영화가 시민을 만난다. BIFF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걸까. 이 물음에 답해 줄 사람은 바로 영화인의 스타 김동호(사진·86)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이다. BIFF 초대 집행위원장이자 첫 민간 조직위원장이었던 그를 자택에서 만났다.


■문화 불모지에 핀 영화제

1996년 시작한 BIFF.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성장했지만 처음엔 우려가 컸다. ‘문화 불모지’라는 부산에서 영화제를 연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었다. 김 이사장은 “오히려 오기가 생겼다”며 “영화진흥공사 사장 시절 러시아 모스크바, 캐나다 몬트리올 영화제에 참석했는데 영화를 해외로 소개하는 데에는 영화제가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이어 “그 와중에 부산에 거점을 두고 활동하던 이용관, 김지석, 전양준 등이 찾아와 집행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하니 거절할 수 없었다”며 “프랑스 칸, 스페인의 산세바스찬 같이 유명한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는 바다를 끼고 있다. 바다와 영화라는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부산에도 존재해 개최지로 적합했다. 고교 1학년 때까지 피란 생활을 한 곳이라 익숙했다”고 말했다. 젊은 영화인의 열정과 김 이사장의 뚝심이 합쳐졌지만, 가장 큰 문제는 예산이었다. 김 이사장은 “입장료를 제외하고 15억 원이 필요했다.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 이사장의 인적 네트워크가 동원됐다. 대우 김우중 회장이 그의 고등학교 동기였다. 김 회장의 부인인 대우개발 정희자 회장을 찾아가 지원을 약속받았다. 서울 극장연합회 곽정환 회장, 정윤희 배우의 남편이자 고등학교 후배인 중앙건설 조규영 회장에게 손을 벌렸다. 문정수 부산시장에게 펀드레이징(모금) 파티를 요청하기도 했다. 그는 “부산의 기업인 100명만 호텔에 모아 달라고 한 뒤 임권택 감독, 배우 남궁원·강수연 등을 초청해 협찬을 유도하게 했다”고 말했다.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

우여곡절 끝에 열린 첫 번째 영화제. 영화계와 시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당시 남포동 5개 개봉관, 수영만 요트경기장 야외 상영장은 초만원을 이뤘다. 31개국 영화 169편이 상영됐는데 거의 모든 영화가 매진됐다. 10만 명도 힘들다는 예상과 달리 총 관람객은 18만 4071명. 관람객은 낮에는 남포동에서 영화를 보고, 저녁에는 유람선을 타고 수영만 야외 상영장으로 이동했다. 바다를 낀 부산의 낭만을 활용한 코스. 영화제 개최지로 부산을 선택한 김 이사장의 혜안이 적중한 셈이다. 그는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스위스에서 6층 높이의 대형 스크린을 빌려 배로 옮겨 와 요트경기장에 설치했다”고 말했다.

BIFF의 성공 배경엔 김 이사장의 열정이 있었다. 김 이사장은 영화제가 시작하면 부산을 동서로 가로질렀다. 1998년 제3회 영화제. 중국 지아장커 감독의 '소무'가 BIFF 대표 경쟁 부문 뉴커런츠에 초청돼 오후 9시 남포동 부산극장에서 상영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1시간 뒤 해운대구의 한 호텔에서 프랑스 대사가 주최하는 행사가 열리게 된 것. 부산의 교통 상황을 감안하면 하나를 선택하는 게 맞지만 김 이사장이 택한 것은 택배 오토바이였다. 그는 “짐 대신 나를 배달해 달라고 요청했다”며 “정장에 헬멧을 쓰고 오토바이를 이용해 시간을 맞췄다”고 했다.

센텀시티 ‘영화의전당’도 김 이사장의 큰 그림이다. 김 이사장은 “2002년 노무현·이회창 대선후보에게 전용관 건립을 공약에 포함시키라고 설득했다. 랜드마크가 될 수 있도록 국제 공모를 거쳤다”고 밝혔다.

■위기를 딛고… 다시 BIFF

국가대표 영화제로 성장하던 BIFF는 고비를 맞는다. 세월호 사건을 다룬 '다이빙벨' 상영을 두고 부산시와 부산국제영화제 간 대립으로 많은 영화인이 BIFF를 보이콧하겠다며 나선 것. 당시 김 이사장은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갈등 해결을 위해 BIFF의 첫 민간 조직위원장으로 나서게 된다. 김 이사장은 “영화제가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했다”며 “예산을 지원 받지만 영화제는 좋은 영화로 말할 뿐 정치색으로 물드는 것을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BIFF는 초창기부터 정치적으로 완전히 중립을 지향한 영화제다. 2회 영화제 때 김대중 당시 야당 대선 후보가 개막식에 왔지만 무대에 올라가지 못했다”고 했다.

올해로 28회째를 맞는 BIFF. 김 이사장은 외연을 키우기보다 영화제 본래의 역할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탈리아 우디네 영화제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며 “가족적인 분위기가 특징이다. 전 세계 영화인과 시민이 격의 없이 영화에 관해 토론하는 영화제”라고 했다. 그러면서 “BIFF도 영화인과 시민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남형욱 기자 thoth@busan.com ,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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