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맨 시대’ 푸틴이 열고, 시진핑 집권 이후 세계로 확산됐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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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트롱맨/기디언 래크먼

권위적인 통치 지도자 등장 현상
독재·민주국가에서 모두 나타나
민족주의·문화적 보수주의 지향
소수·외국인의 이익 거의 무관심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 3월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 후 ‘중·러 신시대 전면적 전략협력동반자 관계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부산일보DB 시진핑(왼쪽)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올 3월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정상회담 후 ‘중·러 신시대 전면적 전략협력동반자 관계심화에 관한 공동성명’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부산일보DB

러시아 푸틴은 2000년 집권 첫해부터 모든 독립적인 권력 기구를 통제했고, 국가가 핵심 권력기관임을 강조했으며, 전쟁을 이용해서 자신의 지위를 강화했다. 체첸 전쟁이 확대되는 동안 푸틴은 러시아의 이익을 지키고 국민을 테러로부터 보호하는 민족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푸틴은 2007년 뮌헨 안보회의 연설을 통해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도를 서방에 알렸다. 그의 연설에는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이 암시돼 있었다. 2008년 조지아 군사 개입, 2014년 크림반도 합병, 2015년 시리아 파병,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러시아에서 푸틴이 집권한 지 3년이 지난 2003년, 에르도안은 튀르키예의 총리가 됐다. 에르도안도 처음에는 자유주의 개혁가로 서구에서 널리 환영받았으나 20여 년간 집권하는 동안 점점 권위적인 통치자가 되어 갔다. 언론인과 정적을 감옥에 보냈고 군 고위직과 법관, 공무원 등을 숙청했다.

‘스트롱맨 시대’가 전 세계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순간은 중국에서 시진핑이 총서기로 집권한 2012년이다.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수십 년간, 중국공산당은 조심스럽게 집단 지도 체제를 유지했었다. 그러나 시진핑은 마오쩌둥처럼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다지기 시작했고, 국가 발전을 위해 모든 것을 공산당이 통제하겠다는 의지를 재천명했다. 2017년 그는 분명한 마오쩌둥식 화법으로 이렇게 선언했다. “정부, 군대, 사회, 학교 등 동서남북 모든 것의 지도자는 당이다.” 그 당의 지도자는 다름 아닌 시진핑이었다. 2018년 3월 중국은 국가 주석의 임기 제한 규정을 삭제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시진핑이 종신 통치할 길이 열렸다. 주석 임기 제한은 1982년 덩샤오핑이 처음 만든 제도로 마오쩌둥의 개인화된 통치 방식에서 벗어나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더 스트롱맨 더 스트롱맨

<더 스트롱맨>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등 자유주의를 위기에 빠뜨리는 지도자들을 다룬 책이다. ‘스트롱맨’은 새로운 권위주의 통치 방식을 수용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지도자들을 일컫는다. 서구적 시각이라는 틀 속에서 전 세계를 잠식한 스트롱맨들의 등장과 그들이 인기를 얻은 이유, 앞으로의 미래를 폭넓게 분석해 정치적 자유주의자들이 어떻게 스트롱맨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것인지를 모색하는 책이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의 외무 담당 수석 칼럼니스트인 저자는 2000년 러시아에서 푸틴이 권좌에 오르면서 ‘스트롱맨’의 시대가 열렸다고 본다. 이후 스트롱맨 현상은 미국, 중국, 러시아, 인도, 유럽연합, 중남미 대륙 등 거의 전 세계 강대국들을 장악했다.

스트롱맨의 특징은 무엇인가. 이들은 민족주의자, 문화적 보수주의자이다. ‘정치적 올바름(인종, 성별, 종교, 성적 지향 등 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표현을 지양하자는 주장)’을 경멸하며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이나 소수자, 외국인의 이익에 거의 무관심하다. 국내에서는 엘리트 집단에 맞서 일반 국민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는 포퓰리스트다. 국제사회에서는 민족의 화신을 자처한다. 스트롱맨은 자신이 국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개인숭배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법과 제도보다 자신의 본능을 앞세워 통치하고, 대담하면서도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푸틴, 시진핑, 트럼프를 필두로 필리핀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 같은 인물들이 그 사례다.

저자는 “스트롱맨은 독재자의 동의어가 아니며, 스트롱맨의 지배는 독재 체제에만 국한된 현상이 아니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 현대 민주국가에서도 흔하게 나타난다”고 말한다. 2015년 스트롱맨 통치 방식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모임인 유럽연합 내에서 중요한 돌파구를 마련했다. 그해에 점점 독재자가 되어가던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중동 난민과 이민자의 유입을 막는 운동을 주도함으로써 우파 포퓰리스트 집단의 영웅이 됐다. 역시 같은 해 폴란드에서도 좌우를 가리지 않는 포퓰리즘 정당이자 카친스키가 대표로 있던 정당인 법과정의당이 대선과 총선에서 모두 승리했다. 트럼프가 2016년 백악관에 입성한 사건은 사실상 이미 확립된 세계적 추세의 일부였을 뿐이다. 그러나 미국이 가진 특별한 경제적·문화적 힘을 고려할 때, 트럼프의 부상은 스트롱맨 통치 방식을 강화하고 정당화함으로써 세계정세를 바꾸고 모방자들을 양산할 것임을 의미했다.

미국의 조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전 세계 민주주의 강화를 핵심 목표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스트롱맨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권력을 잡았다. 지금 세계정세는 포퓰리스트와 권위적 지도자들이 좌우한다. 이들은 민족주의, 문화 갈등, 영토 분쟁 등이 재유행하는 흐름을 활용하고 있고 이 흐름은 너무나 강력하다. 바이든 대통령의 핵심 난제는 국내외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지속력을 증명하는 일이다. 만약 증명에 실패한다면 바이든 정부는 ‘스트롱맨 시대’에 그저 막간을 채운 정부에 머물 수도 있다.

저자는 “스트롱맨 현상이 앞으로도 수십 년에 걸쳐 세계 정치의 핵심 주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체 결함을 지닌 불안정한 정부 형태인 스트롱맨 통치 시대도 어느 순간에는 막을 내릴 것이지만, 30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기디언 래크먼 지음/최이현 옮김/시공사/408쪽/2만 1000원.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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