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취하고 군림하고 경쟁하는 암컷, 생물학적 편견 깨기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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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컷들/루시 쿡
미어캣 ‘알파 암컷’이 번식 80% 독식
집게벌레 암컷은 새깨 친부 선택권도

<암컷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암컷들>.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암컷들>은 암컷에 대한 기존 선입견을 우아한 분노로 부숴버리는 책이다. “암컷은 착취당하는 성이다. 착취의 진화적 근거는 난자가 정자보다 크다는 사실에 있다”는 것이 기존 선입견이다. 작은 크기로 숫자와 이동성을 극대화한 것이 정자라면, 난자는 큰 크기로 영양분을 극대화한 정반대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이런 성세포의 차이가 성 불평등의 확고한 생물학적 토대라는 것이 기존의 통설이다. 이는 생물학적 편견에 의한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다.

이 책은 ‘동물의 암컷은 수컷만큼이나 성적으로 개방적이고 경쟁심이 강하며 적극적 공격적이고 우세하고 역동적이다’라는 것을 숱한 예로 증명한다. 마다가스카르 케냐 하와이 캐나다를 종횡무진하면서 현대 진화생물학의 새로운 발견으로 다윈 이래 지난 두 세기의 가부장적 프레임을 깬다.

성적 방종이라는 것은 수컷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다. 다른 수컷과의 밀회를 위해 자고 있는 파트너에게서 슬금슬금 멀어지는 암사자의 예는 드물지 않다고 한다. 난교로 유명한 암사자는 발정기 중에 다수의 수컷과 하루 최대 100번까지 짝짓기를 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수컷의 성적 방종’ ‘수줍은 암컷 습성’이 생식 세포에 명시된 생물학적 습성이 아니라는 말이다. 일부일처로 알려진 암새의 90%가 다수의 수컷과 교미한다고 한다. 이런 바람기는 친부가 누구인지 혼동을 줌으로써 영아 살해의 위험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고 양육 과정에서 도움을 받기 위한 교묘한 전략이라는 것이다.

암컷 지배 사례도 많다. 몽구스과의 미어캣은 3~15마리가 씨족사회를 이루는데 우두머리 암컷 한 마리가 번식의 80%를 독점한다고 한다. ‘알파 수컷’이 아니라 ‘알파 암컷’이 있다는 소리다. 황금무당 거미는 교미를 시도하는 수컷을 잡어 먹어버린다. 수컷은 죽어가는 와중에 정자를 발사해 번식에 성공할 따름이라고 한다. 범고래는 5~30마리가 대가족을 이루는 전형적인 모계사회를 구축한다고 한다. 75~105세를 산 암 범고래는 40세 무렵부터 더 이상 새끼를 낳지 않고 아주 긴 세월을 즐기면서 자기 집단을 이끌었다고 한다.

알파 수컷의 배우에 암컷 킹메이커 ‘마마’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개코원숭이 침팬지 히말라야원숭이 버빗원숭이 사회를 잘 관찰하면, 잘난 수컷이 아니라 ‘마마’가 그 사회를 유지하는 네트워크 중재자라는 걸 알 수 있다고 한다. 생물학에서 동물의 생식기는 가장 빠른 진화 기관이라고 한다. 암컷 생식기가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례가 많다. 하이에나 경우, 음핵을 수컷 음경처럼 키워 자기 집단을 지배하면서 그것을 통해 출산도 한다. 청둥오리와 돌고래 경우, 질이 나선형으로 생겼는데 수컷 음경을 차단해 원치 않는 임신을 막는다고 한다. 집게벌레 암컷은 ‘저장낭’에 수컷 정자를 보관함으로써 새끼의 친부를 결정하는 은밀한 선택권을 행사한다고 한다. 흑단상어 코모도왕도마뱀 그물무의비단뱀 톱상어 등처럼 수컷 없이 복제를 통해 단성생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의 주장은 “진화를 이끄는 힘은 하나의 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유전자, 환경과 역동적으로 다양하게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진화의 메카니즘은 자연선택 성선택 사회선택이 복잡하게 뒤엉켜 있다는 것이며, 생물학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과학의 시선은 좀 더 다양해지고 좀 더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루시 쿡 지음/조은영 옮김/웅진지식하우스/496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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