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협치 없이 '지방시대' 없다
논설실장
10일 취임 1주년 맞은 윤 대통령
청와대 개방·동맹 강화 인상적
부산은 재도약 발판 속속 마련
협치 부재·정치 실종, 국정 걸림돌
올드보이 귀환으로 정국 긴장 고조
대화가 더 긴요해진 대통령의 시간
윤석열 대통령이 10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라는 국정 비전과 국정 목표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는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임기 5년 가운데 벌써 20%를 넘겼기 때문이다. 특히 ‘새 빗자루가 잘 쓸린다’는 서양 격언도 있는 만큼 아무래도 국정의 성과는 출범 초기에 집중적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다.
국민 정서로 볼 때 윤 대통령 취임은 청와대 개방과 함께 시작됐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대한민국 권력의 오랜 심부였던 청와대가 2022년 5월 10일 시민에게 개방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청와대는 ‘용산 대통령실’이라는 낯선 이름에 권력을 이양했다. 지난 1년간 누적 관람객 수가 350만 명에 가까울 정도로 청와대는 관광 핫스폿이 되었다. 밖으로는 한·미·일 동맹 강화와 북·중·러 거리 두기도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부산은 지난 1년간 착실하게 재도약의 발판을 닦아 왔다. 윤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2030월드엑스포에 부산이 성큼 다가섰다. 비록 부울경 메가시티는 좌초했지만 엑스포는 ‘국가 성장축 부산’의 확실한 모멘텀으로 기대를 모은다. 국토교통부는 ‘가덕도신공항 조기개항 로드맵’을 발표해 엑스포에 힘을 실었고, 내처 KDB산업은행을 ‘지방이전 대상 공공기관’에 지정해 산은 부산 이전을 가시화했다.
하지만 부산으로선 아직 갈 길이 멀다. 6월 말 프랑스 파리에서 열리는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의 4차 프레젠테이션(PT)을 거쳐 11월 최종 개최지 투표에 이르기까지 숨 가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엑스포는 국회가 ‘유치 결의문’을 발표할 정도로 여야가 따로 없지만 산은 이전으로 가면 정치권이 분열상을 보이기 시작한다. 본사 위치를 서울로 규정한 한국산업은행법을 고쳐야 매듭을 짓지만 거대 야당의 반대로 난항 중이다.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도 국회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지방자치분권 및 지역균형발전에 관한 특별법’이 국무회의와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된 채 처리가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교육자유특구 조항을 둘러싼 쟁점이 걸림돌이 되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균형발전, 지방분권은 물론이고 컨트롤타워인 지방시대위원회조차 위기에 놓였다.
윤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은 국정의 난맥상은 정치에서 유독 돋을새김 된다. 0.73%포인트(P) 차이로 정권을 넘긴 168석의 더불어민주당과 정부·여당이 사사건건 마찰음을 내고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을 맞아 거대 야당의 발목잡기를 비판했고, 이재명 대표는 “대통령은 1년 내내 전임 정부 탓, 야당 탓만 하고 있다”고 맞받았다. 협치 부재, 정치 실종이 이 나라의 앞날을 완강하게 가로막는 현실을 국민이 목도하고 있다.
문제는 갈수록 태산이라는 점이다. 입법 강행-거부권 행사로 입법부와 행정부의 대립이 첨예화하는 가운데 1년도 채 남지 않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진영 갈등도 증폭되는 양상이다. 그 중심에 5월 10일 취임한 윤 대통령과 그날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을 더한다. 전·후임 대통령이 구심점을 이룬 정치 분열과 갈등은 국론 분열과 정쟁 격화로 곧장 직행하게 마련이다.
특히 5월 10일을 즈음해 정치 페달을 가속하는 문 전 대통령의 행보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평산책방을 열어 ‘책방 정치’를 본격화한 가운데 10일 다큐 영화 ‘문재인입니다’ 개봉, 17일 ‘5·18’을 앞둔 광주 방문 등 보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 송영길 전 대표의 ‘돈 봉투 살포’에 이은 김남국 의원의 ‘코인 사태’로 도덕성 위기에 내몰린 거대 야당이 평산마을을 긴급 피난처로 삼고 있는 모양새다.
퇴임 직전 여론조사에서도 지지율 45%를 기록한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40%를 넘는 콘크리트 지지율을 유지했다. 이런 두 전·현직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 갈등과 분열은 국가적으로 큰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여야 영수 회담보다는 되레 두 대통령의 대화가 더 필요한 게 지금의 상황인지도 모른다.
국정의 난맥을 죄다 전 정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은 국민 보기에 떳떳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올드보이의 귀환을 재촉할 뿐이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뉴보이의 정책은 새것 그 자체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행정부와 국회가 따로 논다면 천금 같은 5년의 임기 중 더 많은 시간을 허투루 보낼 뿐이다. 협치로 국정을 안정화하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내년 4·10 총선에서도 유리한 교두보를 확보할 수 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한 길이 진정 어디로 나 있는지 윤 대통령이 거듭 심사숙고해야 할 시간이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