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탕비실에서만" 돈 쓰면 혼나는 '거지방'
지출 내역 공유하며 절약 유도
‘거지방’ 카톡 채팅방만 수백 개
과시욕·현실 사이 씁쓸한 풍경
“하루 10원이라도 모으면 쏠쏠”
미션 수행해 푼돈 버는 앱테크
실용·공유 중시하는 세태 방증
고물가·고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지출 내역을 공유하고 서로 조언하며 절약을 유도하는 ‘SNS 거지방’이 유행하고 있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젊은 층 사이에선 앱을 통해 쌈짓돈을 모으는 ‘앱테크’도 열풍이다. 사회·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극단적 절약’에 몰린다는 풀이와 함께 ‘실용’과 ‘공유’를 중시하는 젊은 층의 세태를 보여준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11일 오전 카카오톡 검색창에 ‘거지방’을 검색하자 관련 오픈 채팅방 수백 개가 나왔다. 이날 오전 개설된 채팅방에 들어가 보니 1시간도 채 되지 않아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렸다. 채팅방 공지에는 ‘돈 자랑은 강퇴지만, 소액이나 마이너스는 가능하다’ ‘이모티콘은 무료만 써달라’ ‘비싼 음식 사진 금지(직접 요리한 음식은 가능)’ 등의 게시글이 올라와 있었다.
거지방은 서로 모르는 사이지만 지출 명세 공유하며 ‘거지처럼 아끼자’는 취지로 운영된다. 채팅방 닉네임에 이번 달 지출 목표를 정해 놓고 소비를 계획할 때마다 채팅방에 공유한다. 불필요한 소비라면 따끔한 충고가 오간다. 가령 “커피가 먹고 싶은데 어떻게 할까요”라는 질문을 올리면 “커피는 회사 탕비실에서만 드세요”라고 충고를 해주는 식이다.
거지방의 인기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의 방증이지만, 자기 관리를 중시하고 의사 결정 과정에서 또래 집단의 기준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층의 세태를 보여준다. 김정숙 계명대 소비자정보학과 교수는 “현재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절제나 검소에 대한 경험이 적은 세대로, 내재적으로는 과시하고 싶은 욕구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상황을 서로 희화화하며 공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마트폰을 활용해 돈을 버는 재테크인 ‘앱테크’도 인기다. 앱테크는 광고를 보거나 퀴즈 등의 미션을 수행하면 캐시백이나 현금을 주는 방식으로 소액을 벌어 ‘짠테크’라고 불리기도 한다.
직장인 이지민(24) 씨는 매일 오전 11시 정각이 되면 회사 동료들과 모인다. 금융앱 ‘토스’를 주위에 함께 켠 사람이 있으면 하루에 인당 10원씩 주는 ‘토스 모임’을 하기 위해서다. 소수로 시작한 모임이 13명이 모여 매일 100원 이상 쌓인다. 이 씨는 “소액이지만 벌써 7000원을 벌 정도로 꾸준히 모으면 꽤 쏠쏠하다”고 말했다.
삼성 금융사 통합앱 ‘모니모’에서는 매일 5000보 걷기, 동영상 보기 등의 챌린지를 수행하면 보상 ‘젤리’를 받는다. 이 젤리는 현금으로 바꾸거나 펀드 등 금융상품에 투자할 수 있는데, 매월 최대 1만 원 넘게 벌 수 있어 인기를 끈다. 또 캐시워크에서는 ‘돈 버는 퀴즈’를 풀면 10~20캐시를 받을 수 있어, 이용자들끼리 서로 정답을 공유하는 오픈채팅방까지 생겨날 정도다. 이런 앱에서 현금이나 포인트, 쿠폰 등을 챙겨 소액의 생활비를 번다고 해서 ‘디지털 폐지 줍기’라는 별명도 붙었다.
최근 외식 물가가 크게 뛰면서 직장인들은 점심으로 ‘편의점 도시락’을 찾는 경우도 많이 늘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식 물가는 2020년 12월부터 지난달까지 29개월 연속으로 오르며 누적된 외식 물가 상승률은 16.8%에 달한다. 품목별로 보면 햄버거(27.8%) 피자(24.3%) 김밥(23.2%) 갈비탕(22.5%) 라면(21.2%) 등의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직장인 이동호(36) 씨는 “편의점에서 가성비가 좋은 도시락을 사기 위해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누가 먼저 나갈지 눈치싸움도 벌어진다”고 말했다.
황보승윤 한국소비자연맹 부산경남지부 실장은 “거지방이나 앱테크 등은 ‘실용’을 중요하게 여기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유행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면서 “다만, 앱테크의 경우 스타트업 기업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어 소비자들은 개인 정보 보호나 보안 등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