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여성 호르몬제와 노화 방지
김미경 해운대백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동남권항노화의학회 사무총장
당뇨병으로 진료받는 한 환자가 30년 가까이 여성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며 “계속 복용해도 될까요”라고 물어 보셨다. 순간적으로 환자 나이를 다시 확인했다. 워낙 젊어 보여 60대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나이는 79세였다. 그분은 50세에 폐경이 된 뒤 여성 호르몬 치료를 하다가 여성 호르몬제에 대한 나쁜 뉴스들 때문에 끊었지만, 온몸이 아프고 견딜 수가 없어 다시 복용 중이라고 했다. 주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사와 유방암 검사를 하고 있었고 별문제가 없었기에 이렇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젊어 보이시면 계속 드셔야죠.”
여성 호르몬이 급격하게 감소하며 맞게 되는 폐경은 여성에게 있어서 노화가 시작되는 분기점이다. 생식기능뿐 아니라 심장질환, 골다공증, 암, 비만, 치매, 이상지질혈증, 요실금 등 노화와 관련된 여러 질환이 증가한다. 2000년대 이전에는 폐경이 되면 무조건 여성 호르몬을 복용하도록 권고했다. 그 이점을 증명하기 위해 미국국립보건연구원이 연구한 결과가 2002년에 발표됐는데, 한마디로 난리가 났다. 여성 호르몬제가 오히려 심혈관 질환과 뇌졸중, 혈전 색전증, 유방암의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여러 후속 연구들이 나오면서 연구 발표 초기에 알려진 만큼은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다. 우선 심혈관 질환은 폐경이 되고 10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부터 여성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다면 오히려 도움이 되는 것으로 보고됐다. 2002년 연구에서는 폐경 후 10~20년이 지난 여성들에게 여성 호르몬 치료를 시작했기 때문에 심혈관 질환이 늘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폐경 후 10년 이내에 호르몬 요법을 시작하면 뇌졸중 위험도 줄어들었다. 혈전 색전증 측면에서도 비교적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유방암의 위험도는 호르몬 요법을 시작한 시기와는 관계가 없었다. 자궁이 없는 여성이 호르몬 요법을 할 때는 여성 호르몬만 사용하고, 자궁이 있는 여성은 여성 호르몬과 황체 호르몬을 같이 투여한다. 여성 호르몬만 쓰는 경우에는 복용 후 7년까지도 유방암의 위험도는 증가하지 않는다. 자궁이 있는 여성은 어떤 황체 호르몬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유방암의 위험도가 달라지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유방에 안전한 황체 호르몬을 사용하면 호르몬 치료제의 복용 기간이 10년 이상이더라도 유방암의 위험도가 증가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도 최근 발표됐다.
여성 호르몬 보충 요법이 항상 일관되게 좋은 질환은 골다공증, 대장암, 관절통, 우울감 등이었다. 안면 홍조, 비뇨생식기계 증상에는 어떤 약제도 따라오지 못하는 좋은 효과를 입증했다.
결론적으로, 폐경 후 여성 호르몬을 보충하는 것이 노화 방지에 좋으냐는 것은 개개인에 따라 다르다. 처음 예로 든 환자의 경우는 여성 호르몬이 동안과 노화 방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모든 치료가 그렇지만, 개인별 맞춤 치료가 더욱더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주치의와 꼭 의논하고 득과 실을 따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