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간호법 거부권, '정치 실종' 언제까지 되풀이하나
대화 외면한 여야 조정·중재 역할 상실
협치로 민생 챙겨 정치 불신 해소해야
예상은 한 치도 빗나가지 않았다.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법률안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했다. 현행 의료법의 간호사 업무 규정을 별도로 분리해 업무 범위와 처우 개선 등을 담은 간호법이 간호사, 의사 등 유관 직역 간 과도한 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는 더불어민주당이 간호법 제정을 주도하며 절대다수 의석을 앞세워 국회 본회의 통과를 밀어붙이고, 국민의힘은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면서 이미 예견됐던 결과다. 민주당이 즉시 거부권 행사를 비난하면서 재투표 의지를 밝히는 등 강력 반발하는 것 또한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지난달 초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 번째다.
과잉 생산된 쌀의 정부 매입을 의무화한 양곡관리법과 간호법은 국회에서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되고, 국민의힘 측으로부터는 포퓰리즘 법안이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 공통점이다. 여야 합의를 거치지 않고 국회에서 처리된 두 법안이 대통령의 법률안 재의 요구에 따라 국회로 되돌아간 게다. 이들 법안은 이해 당사자들의 유불리나 제도적 장단점이 있어 극심한 찬반 논란을 빚는 사안이지만, 여야 간 대화와 타협 등 충분한 숙의 과정이 사라진 안타까운 정치 현실을 잘 보여 준다. 정치가 실종된 셈이다. 이 때문에 특정당의 일방적인 법률안 제·개정 추진이 남발되고,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일상화되진 않을까 걱정된다.
여야가 이해관계나 갈등을 잘 조정하고 적극 중재해 사회적·국민적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정치의 중요한 역할의 하나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이에 노력하기는커녕 계층과 집단의 이익이 갈리는 문제에 대해 반목하고 대립하는 모습을 드러내며 국민을 갈라놓고 국론 분열을 조장하기 일쑤다. 진보·보수 양쪽 진영의 강성 지지층만 의식한 극단 정치에 매몰된 다툼으로 국가적인 에너지를 허비한다. 최근 민주당의 양곡관리법 및 간호법 추진, 이에 대한 정부·여당의 반대 움직임 역시 결과적으론 이해관계자들의 불안감과 분노를 가중시켜 직종 간 마찰과 사회 갈등만 더 키운 꼴이다.
이같이 여야가 협치를 모르고 되풀이하는 ‘정치 실종’ 사태 탓에 민생은 뒷전으로 밀리고 있어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지난 1년간 국회의 법안 통과율이 9.4%에 불과한 사실은 극심한 정쟁을 일삼는 정치권의 부실함과 태만을 증명한다. 이러는 새 국가 미래를 짊어진 청년층은 전세사기로 벼랑 끝에 몰리고 고물가와 불평등의 그림자도 짙어졌다. 내년 4·10 총선이 1년도 남지 않은 지금 국민의 정치 불신이 커져 거대 양당의 지지층은 줄어드는 대신 무당층과 중도층이 급증하는 이유다. 여야의 뼈저린 반성과 환골탈태가 시급함을 경고하는 대목이다. 대통령과 여야 수뇌부가 말뿐이 아닌 진정한 협치와 국민 통합에 나서야 할 때다. 국민을 섬기는 게 최우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