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희의 위드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만드는 친절한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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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큐브디자인랩 대표

어지러운 부산 도심 사고 날까 늘 긴장
사람 가치 중심 디자인으로 거듭나야
부산역~북항부터 랜드마크로 만들자

국제관광도시 부산은 친절한 도시일까? 어디든 쉽게 찾아갈 수 있고, 편안하고 안전한 도시인가? 사무실 근처인 부산역 근방 골목길을 걸을 때면 미얀마 양곤에서의 경험이 자꾸 떠오른다. 내가 살았던 동네는 양곤에서 제법 부자 동네였지만, 길에서 산책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중간중간 움푹 파인 구멍들, 사라져 버린 콘크리트 블록들, 깨진 돌들. 주변의 큰 망고나무나 하늘에 눈을 돌렸다가는 언제 하수구 구덩이에 빠질지 알 수 없기에 발만 쳐다보고 걸었다. 그런데 부산의 관문인 부산역 근처가 그렇다. 골목길은 울퉁불퉁하고 블록들은 끊어져 있어 발밑을 매우 주의해야 한다. 짐을 끌고 다니기도 어렵다. 사람과 차가 섞여 있는 복잡한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온몸이 긴장된다. 편안하거나 안전하지 않다.

유니버설 디자인은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 또는 ‘보편적 디자인’으로 불린다. 초장기에는 미국에서 건축의 장애인을 위한 무장애(barrier-free) 디자인에서 출발했으나, 이후 80년대 ‘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여부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기 쉬운 물건과 환경을 디자인하자’라는 주장과 함께 유니버설 디자인이란 말이 등장했다. 최근 다시 유니버설 디자인이 전국적으로 대두되는 것은 도시재생, 재개발을 중심으로 한 공공 디자인, 도시 디자인 측면의 성격이 강하다고 볼 수 있겠다.

부산시도 이제 시작이다. 2017년 유니버설 디자인 기본 조례를 만들었고, 2020년에는 국토교통부의 스마트시티 챌린지 사업에 선정되어 ‘교통약자를 위한 무장애 교통 환경 조성 사업’을 3년간 200억 원의 예산으로 진행했다. ‘부산도시기본계획 2040’에서는 ‘15분 생활권에서 누구나 함께 오고 싶은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 부산’이라는 비전도 발표했다.

국내 최고 고령화 도시, 국제관광도시로서 부산은 모든 사람을 포용하는 친절하고 매력적인 유니버설 디자인 도시로의 변화를 이룰 것인가? 작년에 종료한 스마트 챌린지 사업에 대한 기대가 컸으나 기존 인프라에 새로운 시스템을 넣는 것이라 쉽지 않았다. 부산시 여러 부서의 ‘급진적 협업’이 있어야 진정한 성과와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핵심은 유니버설 디자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며, 그 중심에 있는 ‘사람’의 가치와 필요를 공감하여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총체적이고 촘촘한 프로세스와 협력을 통한 실행도 뒤따라야 한다. 이런 변화를 일구어 낸 대표적 도시로 후쿠오카가 있다. 부산에서 배로 3시간만 가면 도착하는 일본의 후쿠오카는 대표적 유니버설 도시다. 1996년부터 일찌감치 고령자, 장애인, 어린이 동반자 등 모든 사람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건물, 교통, 도로, 공원의 유니버설 디자인을 추진해 왔다.

후쿠오카 지하철 3호선 나나쿠마선은 유니버설 디자인이 적용된 대표적 사례다. 개통 10년 전, 초기부터 시민 설문조사와 장애인 탐문조사로 시작하여 문제점과 방향성을 파악하고 공간 구성과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을 내었다. 전 분야에 걸친 토탈 디자인으로 시의 담당자가 변경되어도 아이덴티티가 유지되도록 운영되었다. 도로의 단차 해소, 정확한 안내 표시, 4개 국어 표기, 높이가 조정된 손잡이와 무인 발권기, 소재, 조명, 틈새 관리, 적절한 엘리베이터의 위치 등으로 자연스러운 이동을 가능하게 했다. 또 다른 사례로는 1996년도에 지어진 복합 상업 공간인 ‘커넬시티 하카타’다. 사용자들의 동선과 상업 공간의 경험 디자인이 잘 적용되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장소로 후쿠오카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부산역과 북항을 잇는 공간이 부산의 유니버설 디자인 랜드마크가 되면 어떨까? 부산역은 새로 짓고 있는 환승센터를 포함해서 국제터미널과 함께 바다와 도시로 연결되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 동선이 일어나는 공간이다. 부산역에서 KTX, 도시철도, 선박, 쇼핑, 수변공원, 숙박, 원도심 관광까지 보행자 기반의 매끄러운 서비스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2030엑스포를 상상하며,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몰려올 이곳을, 매력적인 사용자 경험과 유니버설 디자인으로 친절하고 매력적인 부산의 아이콘이 되게 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하지 않을까?

이러한 공간 서비스 경험을 만들어 내려면 하드웨어가 완성되기 전에 기획 단계부터 시작하는 인간 중심, 사용자 중심, 수요자 중심의 연구가 필요하다. 초기 단계부터 사용자, 디자이너, 기획자, 개발자, 정책자가 함께 협력해서 조사를 하고 전략을 짜고 방향성을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이 디자인 씽킹에서 ‘급진적 협력’이라고 하는 프로세스다. 일을 되게 하는 프로세스 디자인에도 창의성과 혁신이 필요하다. 모두를 위한 디자인,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디자인은 친절한 디자인이다. 친절한 디자인은 도시의 매력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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