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를 통해 인간 삶과 세상을 탐문하다
뜻밖의 미술관/김선지
16세기 브뤼헐의 ‘농가의 혼례식’ 등
작품 거꾸로 보기·화가 다시 보기 24편
“인간, 쾌락·욕망·권력에 쉽게 이끌려”
<뜻밖의 미술관>은 프롤로그처럼 ‘세상의 겉껍질을 벗겨내고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그림 이야기’다. 명화를 통해 인간은 무엇일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떤 곳일까를 탐문하는 책이다. ‘명화 거꾸로 보기’ 13편, ‘화가 다시 보기’ 11편 글이 실렸다.
16세기 영국 헨리 8세는 공포정치를 행한 절대왕정 군주로 아내를 여섯이나 두었다. 헨리 8세는 38년 통치했는데 낙마 사고 후 뇌하수체 이상으로 체중이 180킬로그램까지 불었다고 한다. 헨리 8세 시절에 처음 등장한 것이 왕의 변기 보좌관이었다. 왕의 ‘변’을 통해 건강을 살피는 최측근으로 왕의 권력을 나눠가질 수 있어 귀족들이 서로 지원했다고 한다. 저자는 용무 뒤에 왕의 뒤도 닦아줬을 것으로 본다. 대식가 왕의 변 냄새는 상당히 고약했을 터인데 귀족들은 그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권력에 끌렸다는 거다. 시쳇말로 ‘똥꼬 빤다’는 말 그대로다. 힘 있는 사람에게 아부, 아첨하는 것은 인간 세상의 오랜 처세술이라는 거다. 영국 왕실에서 ‘변기 보좌관’은 1901년까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권력의 ‘똥꼬를 빠는 현대판 변기 보좌관들’은 우리 주변에 항상 늘려 있지 않은가, 라는 게 저자의 지적이다.
티치아노의 1538년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비너스를 그린 우아한 르네상스 걸작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그림의 여성은 당대 베네치아 최고급 매춘부였다고 한다. 메디치 손자가 밀실에 걸어놓기 위해 주문한 그림인데 그 그림이 우르비노 공작에게 팔려간 뒤 고상한 걸작으로 둔갑했다는 거다. 그림은 애초 주문처럼 노골적인 눈빚에 음탕한 유혹이 드러난다는 거다.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이 그림을 보고 “세상이 소장한 가장 역겹고 비도덕적이며 외설적인 그림”이라고 혹평했다고 한다. ‘인간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저자의 답은 세속적 쾌락을 좇고, 권력에 끌리고 기괴한 것을 추구하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일 테다. 인간 삶의 9할이 고통이라면, 그 9할이 인간의 탐욕 오욕 욕정으로 얼룩져 있다는 거다.
인간이 욕망에 얽매이는 존재라고 내내 심각해질 필요는 없다. 그걸 그대로 긍정하면 된다. 16세기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은 ‘삶의 쾌락을 향유하는 즐거운 증세, 인간의 삶’을 그렸다. 그의 그림에는 ‘남성 물건’을 도드라지게 해놨거나, 남녀가 끌어안고 있는 장면 표현이 많이 나온다. 1567년 작 ‘농가의 혼례식’에서도 파이프를 들고 있는 남자의 가운데를 불룩하게 그렸고, 위쪽 어두운 건초더미에 섹스하는 남녀 모습을 살짝 그려 넣어놨다(아버지 그림을 모사한 아들 브뤼헐 그림에 그것이 더 선명하다). 세속적 쾌락의 건강한 세계가 묘사돼 있다.
하지만 세속적으로 겉모습과, 헛된 신화와 편견에 사로잡히는 것이 인간이다. 외모 지상주의에 늘 끌리는 것이 인간인 거다. 3세기 이후 예수는 항상 잘생긴 백인 남자였다. 영국 BBC 다큐에서 복원한 예수는 구릿빛 피부의 건장한 청년 모습이었다. 인간은 욕망과 편견에 의해 사물을 보는 종류다. 대리석 조각은 항상 백색 조각 형태라고 여긴다. 그것은 세월의 풍화로 원래 채색이 벗겨진 것일 뿐이라고 한다. 황금비(1:1.618)는 헛된 신화라고 한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상, 밀로의 비너스는 실측해보니 황금비가 아님이 밝혀졌다는 거다. 파르테논 신전, 모나리자 그림 등등에 황금비는 없다는 거다. 황금비는 인간이 믿고 싶어하는 것을 투사한 일종의 신비주의 신화라는 거다.
중세 ‘고다이바 설화’에 기반한 많은 그림은 성애를 투영시킨 욕망의 투사물이라고 한다. 존 콜리어의 1898년 ‘고다이바 부인’은 귀족 부인이 백성들 세금을 감면해주기 위해 나체로 마을을 한 바퀴 돌았다는 설화를 기반으로 그린 거다. 실제는 ‘발가벗은’ 게 아니라 값비싼 옷과 장신구를 벗은 정도인데 나체로 그렸다는 거다. 고갱 신화도 허무맹랑하다고 한다. 타히티의 고갱은 매독에 걸린 채로 13~14세 원주민 소녀와 문란한 관계를 가진, 문화 식민주의자 혹은 미성년 소녀들 성착취한 소아성애자라는 비판도 듣는다고 한다. 반대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미술사에 사라졌다가 조명 받는 이도 있다. 17세기 이탈리아 여성 거장 젠틸레스키, 18세기 프랑스 여성 화가 마담 르 브룅이 그들이다.
뭉크, 벨라스케즈, 고흐, 미켈란젤로, 다빈치, 캉탱 마시, 조르조네 등의 화가에 대한 숨은 얘기들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인간의 삶과 세상사에는 항상 깊숙한 이면이 있다. 생각을 확장하고 편견을 깨면서 우리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장이다. 고야 판화에 경계 메시지가 담겼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눈뜬다’. 김선지 지음/다사북스/340쪽/1만 95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