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탈근대와 기후산업국제박람회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1893년 시카고박람회 야경은 근대의 경이였다. 박람회장을 장식한 수십만 개 전구, 잔잔한 호수와 형형색색의 탐조등이 수놓은 밤하늘 빛의 향연은 그 자체로 한 편의 드라마였다. 광안대교의 경관조명이 화려한 이즈음의 야경에 비할까마는 당시 사람들이 처음 경험한 야경은 분명 새로운 세기의 시작이었다. 박람회장에 공급된 전력량이 시카고 전체 소비량의 3배에 달했을 만큼 비용은 막대했으나, 어찌 삶의 극적 전환에 비길 수 있으랴. 전기는 근대문명의 도약을 추동한 강력한 힘이었다.
과거에는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가 주된 발전(發電) 자원이었다. 기후위기가 전지구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에너지 정책의 방향은 그린에너지로 전환되었다.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와 같은 재생에너지와 수소에너지, 연료전지 등 신에너지 개발이 붐을 이루었다. 애초에 완벽한 에너지원이란 있을 수 없다. 옥수수를 원료로 한 바이오연료의 사용은 국제 식량가격의 폭등으로 이어지고, 나무조각을 압축한 우드팰릿 연료는 목재값의 폭등과 삼림 파괴를 초래했다. 풍력발전이나 태양력 발전이 삶터나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안보 문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에너지의 안정적인 공급이 기후위기 대응보다 더 시급한 의제가 되어버린 셈이다. 폐기하다시피 했던 화력발전의 부활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느 흥미로운 해의 일기〉, 〈연료강탈자〉, 〈아르체스툴라〉는 에너지 배급과 제한을 다룬 기후소설이다. 2040년 이후를 배경으로 인터넷 사용과 자동차 운행, 거주지 선택과 문화예술 소비가 제한되는 상황을 그렸다. 에너지 문제는 정주와 모빌리티, 취향 등 삶의 모든 조건에 영향을 미친다. 사회 모든 영역에서 디지털화가 가속화되고 있는 오늘날과 견줄 때 실제로 맞닥뜨리게 될 현실은 이보다 더 섬찟할 수 있다. 진실이 웬만한 허구보다 더 황당할 수 있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면 야경을 보는 사치 또한 꿈꾸기 어려우리라.
기술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한때 과학기술은 위기를 초래한 주범으로 몰렸으나 지금은 문제 해결의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낙관론이 힘을 얻고 있다. 5월 25일부터 27일까지 벡스코에서 기후산업국제박람회가 열린다. 기후산업 분야 최신 기술과 정책을 선보이는 자리다. 물론 기술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기술에 대한 막연한 낙관이나 전적인 신뢰보다 중요한 것은 더 강력한 대응과 지속적인 실천을 촉발하는 인식의 전환이다. 인간중심적 세계관에서 생태학적 세계관으로의 전회는 인류의 운명을 가늠할 변곡점이다. 정책입안자와 기업인, 과학자, 문화예술 크리에이터들이 펼쳐내는 담론적 실천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