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아듀! 의무경찰'
1980, 90년대에 병역 의무를 마친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같은 기간 동안 병역 의무를 마쳤더라도 어디에 근무했는지에 따라 은연중 어떤 서열이 지워졌다. 복학생끼리 얘기할 때 가장 목소리가 큰 이는 대체로 강원도 첩첩산중 전방에서 수색대나 철책 근무를 한 사람이다. 그다음엔 이보다 조금 후방에서 근무한 사람이다.
이렇게 차츰 내려오다 보면 경찰서에서 경찰 업무를 보조했던 전투경찰인 ‘전경’과 의무경찰인 ‘의경’의 차례는 거의 마지막에나 찾아온다. 이들은 전방 출신 복학생이 화려했던 무용담(?)으로 좌중을 휘젓는 동안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다. 당시 군사정권 시절, 경찰서 등에서 근무했던 전·의경들은 같은 또래 친구들과 대학교 앞이나 길거리 등에서 서로 ‘적’으로 만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다. 제대한 뒤에야 물론 같이 어울리기도 했지만, 예전 유쾌하지 못했던 경험은 늘 보이지 않는 문턱으로 남곤 했다.
군사정권 시대는 물론 민주화 이후 지금까지도 남아 경찰의 치안 업무를 보조했던 의경이 최근 완전히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41년 전 창설된 의경의 마지막 기수인 1142기가 17일 마지막으로 전역한 것이다. 일선 경찰서에서 현역과 함께 치안 업무를 보조하던 앳된 얼굴의 청년들 어깨에 달린 ‘무궁화 꽃봉오리 하나’도 이제 볼 수 없게 됐다.
1982년 기존 전투경찰을 전경과 의경으로 분리하면서 창설된 의경은 그동안 방범 순찰과 집회·시위 관리, 교통 정리, 국회·외교공관 등 시설경비 업무를 주로 담당해 왔다. 2013년 전경이 폐지된 뒤에는 대간첩 작전 업무도 도맡았다.
의경의 인기는 2010년 이후엔 급상승했다. 군인보다 비교적 자유로운 외출·외박과 도심 근무가 장점으로 부각돼 경쟁률 20 대 1을 웃돌았다. 하지만 근래 출산율 감소에 따라 현역병 징집 인원 부족 문제가 대두하면서 결국 폐지 수순을 밟았다.
치안 업무의 한 축을 담당했던 의경이 없어지면서 당장 경찰의 치안 대응 능력에 혹시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경찰은 이 공백을 경찰 공무원의 채용 증원으로 대처한다는 계획이다. 어쨌거나 의경은 길거리에서 순찰하는 모습만으로도 시민들의 치안 불안감을 많이 없애 주던 존재였다. 청년들로서는 징병제 국가에서 병역 의무 선택지 하나가 사라지게 돼 다소 아쉽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