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아 시설 ‘나쁜 보육’에도 학부모 눈감아야 할 판
‘집단 학대’ 경남 진주 어린이집
운영 중단 땐 치료 공백 떠안아
치료사 없는 통합 시설 전원 곤란
부모에 부담 전가 막는 대안 필요
집단 학대가 일어난 경남 진주시 A 장애인어린이집에 대한 처벌 요구가 잇따르고 업무정지 명령이 부실하다는 여론까지 일지만 시가 적극적으로 대응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일부 학부모들이 가까운 거리에 장애아전문보육이나 방과 후 보육을 제공하는 곳이 없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부족한 보육 인프라 탓에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는 만큼 재발을 막기 위한 전방위적인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8일 진주시에 따르면 시는 사건 발생 후 해당 어린이집에 6개월 업무정지 사전 공지를 했다. 하지만 해당 어린이집은 여전히 운영 중이다. 두 차례 학부모 간담회를 열고 아이들을 옮기는 방안에 대해서 논의했지만 학부모들 반대로 전원 조치가 쉽지 않은 탓이다.
어린이집의 영업 중지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맞벌이 부부의 선택지가 없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고 있다. 해당 어린이집이 주택가에 위치해 있어 접근성이 높은데다 장애 아동의 특성상 다른 어린이집에 갔을 때 적응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피해 아동 학부모조차 전원을 선뜻 택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한 피해 아동 학부모는 “전문어린이집처럼 치료사가 별도로 배치돼 있지 않은 장애아통합어린이집에 애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발달 치료 공백’은 부모가 고스란히 떠안는 게 현실이다. 지난 3월 보조금 횡령으로 폐원된 부산 사상구 장애아전문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냈던 한 학부모는 1회 수업에 4만 원짜리 사설 발달센터에 아이를 보내며 치료사 공백을 메우고 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보건복지부 지침에 따라 전문어린이집은 원아 9명당 치료사 1명에 대한 인건비를 지원 받는다. 반면, 장애아통합어린이집은 치료사 인건비 지원이 없어, 치료사를 고용하지 않는 곳이 태반이다.
피해 아동을 모두 전원 조치한 뒤 업무정지 등 행정처분을 내릴 예정이었던 시는 이처럼 학부모 반대가 이어지자 과징금 처분도 고려 중이다. 시 관계자는 “원장 자격정지와 같은 다른 처분도 이뤄질 수도 있다”며 “중요한 건 원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업무정지가 아닌 다른 형태의 징계는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 법인이나 개인이 지자체와 위수탁 계약을 맺고 어린이집을 운영하기 때문에 아동학대 사건이 터지면 관할 지자체는 위수탁 계약을 중단하거나 재계약 시 페널티를 줄 수 있다. 반면, A 어린이집은 사회복지법인이 설립한 어린이집이어서 재산권이 법인에 있는 만큼 지자체의 개입이 쉽지 않은 데다 원장이 법인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형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원장을 해임하더라도 이사장으로서 어린이집 운영에 계속 나설 수 있어 아동 학대 등 ‘나쁜 보육’이 재발될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창원대 최진오 특수교육학과장은 “방어 능력이 없는 아동을 대상으로 벌어진 학대인 만큼 단순히 몰랐다고, 처벌할 근거가 없다고 해서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최 학과장은 “관리 감독을 해야 하는 관할 지자체도, 정책을 만들어야 하는 정치권에서도 뒷짐만 지고 있어서는 안 된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장애인부모회 역시 ‘울며 겨자 먹기’로 학대 어린이집의 존치를 요구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지적하며, 부모에게 부담이 전가되지 않도록 보다 다각적인 지원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공립 특수보육 기관을 확대해 안정성을 확보하고, 민간 법인의 경우 이사회에 부모 당사자 참여를 보장해 지도 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산장애인부모회 도우경 회장은 “장애아동을 위한 국공립 어린이집이 최소한 각 구·군마다 1곳씩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 회장은 이어 “아이들을 보육하며 발생하는 이익에 기대지 않는 집단이 운영하는 게 마땅하고, 국가와 지자체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며 “문제가 터지면 결국 지자체가 할 수 있는 건 폐쇄 조치가 최선인데, 피해는 우리 아이들과 부모에게 오롯이 전가된다”고 말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