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문화교류·국제무역의 현장에 ‘중인’ 역관이 있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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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 7월 9일까지 특별전 ‘조선의 외교관, 역관’
공재 윤두서 그린 보물 ‘일본여도’ 등 150여 점 전시
‘중인 시대’ 이끈 역관 활약·‘국제무역항 부산’ 확인
왜관 현장 실무 맡은 부산 현지인 소통사 유물 전시

문위행 배가 쓰시마 이즈하라에 입항하는 희귀한 장면을 그린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 부산박물관 제공 문위행 배가 쓰시마 이즈하라에 입항하는 희귀한 장면을 그린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 부산박물관 제공

7월 9일까지 열리는 2023 부산박물관 특별기획전 ‘조선의 외교관, 역관(譯官)’은 조선을 대륙과 해양으로 연결한 실무자 역관을 조명한다. 역관들의 이야기를 최초로 펼친 전시다. “조선시대 부산은 문화교류의 무대이자 국제 무역항으로 역할을 수행했음”을 드러내려 했다는 것이 부산박물관 측의 설명이다. 전시는 23개 기관의 150여 점 유물을 통해 ‘이역만리, 사행을 떠나다’ ‘왜관과 부산의 역관’ ‘외교관으로 성장하다’ ‘역관 열전’, 4가지 세부 주제로 구성했다.

공재 윤두서가 18세기 초에 모사한 아주 상세한 일본 전도인 보물 ‘일본여도(日本輿圖)’. 부산박물관 제공 공재 윤두서가 18세기 초에 모사한 아주 상세한 일본 전도인 보물 ‘일본여도(日本輿圖)’. 부산박물관 제공
윤두서가 자화상을 그릴 때 사용했다는 17세기 후반 일본 에도시대의 백동경. 부산박물관 제공 윤두서가 자화상을 그릴 때 사용했다는 17세기 후반 일본 에도시대의 백동경. 부산박물관 제공

임란 이후 부산은 왜관을 중심으로 전개된 외교 및 무역활동에 의해 풍부한 재화와 사람들로 붐비는 핫플레이스로 급성장했다. 다양한 물품이 부산을 통해 들어와 조선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중 단연 눈에 띄는 것은 해남 윤씨 녹우당 소장의 보물 ‘일본여도(日本輿圖)’다. 동양 최고의 자화상을 그린 공재 윤두서가 18세기 초에 모사한 아주 상세한 일본 전도다. 이는 당대 조선 지식인의 ‘타자’ 인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사례다. 윤두서는 일본 역사서와 지리서를 섭렵해 1711년 통신사 별천(別薦) 명단에 이름이 오를 정도였다. 그뿐만 아니라 해남 녹우당에는 17세기 후반 일본 에도시대에 제작된 백동경(白銅鏡)도 있는데 이는 통신사 사행 때 가져온 것으로 윤두서가 자화상을 그리면서 사용했다는 유물이다.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였던 화협옹주의 묘에서 나온, 일본 수입품인 각종 명기들. 부산박물관 제공 영조의 딸이자 사도세자의 친누나였던 화협옹주의 묘에서 나온, 일본 수입품인 각종 명기들.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을 통해 들어온 이른바 왜물(倭物)은 왕실과 사찰에도 들어갔다. 통신사 사행 때 선물로 받아온 ‘부용안도 병풍’에는 영조의 친필 글씨가 남아 있고, 영조의 딸로 19세에 사망한 화협옹주 묘에는 자그마한 도자기 명기들이 출토됐는데 화장품 용기였다고 한다. 통도사 등에도 18세기 일본 자기가 나왔는데 부도에 사리 용기로 사용된 것이다. “17세기와 달리 18세기 들어 경화세족의 호사 취미가 확산하면서 일본 기술과 문화, 물건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기호가 널리 자리 잡았다”는 것이 이준혁 학예연구사의 설명이다.

초량왜관의 일본인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18세기 부산의 종6품 주부(注簿) 박위보의 인물화. 부산박물관 제공 초량왜관의 일본인이 스승으로 모셨다는 18세기 부산의 종6품 주부(注簿) 박위보의 인물화. 부산박물관 제공

중인 역관을 둘러싼 많은 인물들이 등장했다. 역관 강우성은 부산포 조선 관리와 왜관 일본인들의 대화에 자주 쓰이는 표현을 가져와 17세기 일본어 현장 학습서 <첩어신해>를 편찬했다. 18세기 부산의 종6품 주부(注簿) 박위보도 인물화로 남아 있다. 초량왜관에 와 있었던 일본인이 그에게 학문을 배우고 쓰시마로 돌아간 뒤 그를 잊지 못해 아침저녁으로 술잔을 올리기 위해 그렸던 인물화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사제 정이 담긴, 한일교류의 단면이 담긴 그림이다.

한일교류에서 역관 현덕윤과 일본 아메노모리 호슈의 인연을 뺄 수 없다. 그들이 새긴 것이 성신교린(誠信交隣, 성실과 믿음으로 사귄다)이다. 현덕윤은 18세기 이후 당대 최고의 역관 집안 출신이다. 동생, 아들, 손자, 조카까지도 모두 유명한 왜학 역관이었다. 이 집안에서 소설가 현진건, 가수 현인이 나왔는데 특히 현인의 부친은 집안 내력을 따라 근대 부산에서 한일 무역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당대의 유명한 역관 현덕윤이 1705년 역과 3등에 합격해 받은 교지. 부산박물관 제공 당대의 유명한 역관 현덕윤이 1705년 역과 3등에 합격해 받은 교지.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의 역관은 세부적으로 훈도, 별차, 소통사로 나누는데 중앙에서 파견된 것이 훈도, 별차이고, 왜관 현장의 실무를 맡은 부산 현지인이 소통사다. 소통사 중 부산의 개화인으로 유명한 박기종도 있었다. 1805년 서계 위조 사건에 휘말려 사형된 소통사 박윤한도 있는데 그의 거침없는 필치를 일본인들이 상당히 좋아했다고 한다. 이번 전시에 관련 유물이 나와 있는 소통사들이다.

1856년 역관 김계운의 문위행 귀환을 그린 ‘범사도(泛槎圖)’. 풍랑을 만나 일본인이 칼을 뽑아 돛대를 자르는 절박한 장면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부산박물관 제공 1856년 역관 김계운의 문위행 귀환을 그린 ‘범사도(泛槎圖)’. 풍랑을 만나 일본인이 칼을 뽑아 돛대를 자르는 절박한 장면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부산박물관 제공

조선의 외교는 대체로 균형외교를 추구한 광해군 이후 더욱 섬세해졌다. 부산을 중심으로 1632~1860년 총 54회 쓰시마에 파견된 새로운 외교사절이 문위행(問慰行)이다. 화원 유숙이 그린 ‘범사도(泛槎圖)’는 1856년 역관 김계운의 문위행 귀환을 그린 것이다. 79명이 승선한 배가 풍랑을 만나 전복되기 직전에 일본인이 칼을 뽑아 돛대를 자르는 절박한 장면이 생생히 묘사돼 있는데 이 배는 울산 방어진에 겨우 표착했다고 한다. ‘조선국 역관사 입선지도’는 문위행 배가 쓰시마 이즈하라에 입항하는 희귀한 장면까지 그려져 있으며, ‘역관사행도’와 함께 문위행 행렬 모습을 드물게 포함하고 있다.

‘역관 열전’ 편에는 홍순언 김지남 장현 변승업 홍세태 이언진 이상적 정지윤 오경석 오세창 등도 소개돼 있다. 역관은 대체로 10세 전후에 사역원(司譯院) 생도로 들어가 외국어(한학 왜학 여진학 몽학)를 학습한 뒤 20세가 넘으면 역과에 응시했다. 1876년 뛰어난 글재주로 6세에 들어가 18세 때 합격한 김인즙 같은 경우도 있었다. 역관이 사회 역사적으로 진출했다는 것은 ‘중인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것이다. 동아시아적 전망에서 임란 이후를 ‘현대’로 보는데 그 시대 변화 속에서 중인이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번 전시는 부산과 왜관에 더 집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없지 않다. 정은우 부산박물관장은 “세계와의 소통을 주제로 삼은 이번 특별기획전은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를 기원하는 것”이라고 했다.

부산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외교관, 역관(譯官)’ 포스터. 부산박물관 제공 부산박물관 특별전 ‘조선의 외교관, 역관(譯官)’ 포스터. 부산박물관 제공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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