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해탈 경지, 살아있는 이 순간에 느꼈으면 참 좋겠다”
보운 범어사 주지 스님 부처님오신날 인터뷰
“부처님 가르침의 요체는 연기법과 중도”
“양보·이해 통한 갈등 해소 과정 더 중요”
“부처님이 정각을 통해 이른 편안한 해탈의 경지를 많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이 순간에 느꼈으면 참 좋겠습니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보운 범어사 주지 스님을 지난 18일 찾았다. 지난해 8월 새 주지 소임을 맡은 이후 미디어와의 첫 인터뷰다. 그날 떨어지는 비가 절 마당을 뒤덮은 연등에 또독또독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수많은 오고 감 속에서 부처님 오신 뜻은 무엇인가요.
“근심 걱정 속에 살다가 해탈의 경지가 있구나, 하는 것을 밝게 깨달으신 분이 부처님이십니다. 그 경지를 많은 사람과 나누기 위해 부처님이 오신 것입니다.”
주지실에 들어서던 보운 스님은 여닫이문을 열면서 “비 오는 모습이 너무 좋다”고 했다. 대지의 수분이 증발한 뒤 다시 대지를 적시고 있었다. 산색은 상큼한 초록이었다.
-하지만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요.
“어려운 게 아닙니다. 다만 안 하는 것입니다. 처음에 부처님께서도 깨달음이 나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냐, 고민하셨습니다. 하지만 최초 제자 다섯 중 ‘교진여’가 드디어 그 경지를 알아먹자 부처님은 ‘누구나 할 수 있구나’라는 사실에 진실로 기뻐했습니다. 하면 된다는 것이 밝혀진 것입니다.” 그것이 밝혀진 이후 부처의 가르침은 2500년 동안 지구상 곳곳으로 퍼졌다.
-인간이 신적 단계까지 넘본다는 21세기 초과학 시대에도 부처님 가르침은 유용할까요.
“새벽의 보리수나무 아래서 정각 이른 부처님, 그 깨달음의 요체는 연기법입니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니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연기법은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無我)’ ‘무상(無常)’과 통합니다. 고도한 AI(인공지능)와 유전 공학에 이르는 끊임없는 발전은, 차라리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무아’를 역설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문밖에서는 빗물 떨어지는 시원한 소리가 짙어지고 있었다.
-늘 염두에 두는 일구(一句)는 무엇인가요.
“중도(中道)입니다. 부처님은 중도의 수행 방법을 경험적으로 체득했습니다. 출가 전에는 쾌락을 많이 체험하셨는데 그를 통해 허무를 느꼈어요. 출가 후에는 6년간 죽음을 각오한 처절한 고행의 수행을 했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걸 체득했어요. 낙과 함께 고도 양극단의 하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도는 늘 깨어있고 몰입해야 한다는 것을 요구합니다. 중도는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실천돼야 합니다. ‘바로 지금 여기일 뿐, 다른 호시절은 없다’고 했습니다.”
-주지 소임을 맡은 이후 특별히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한 발 한 발 디딜 때마다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매 순간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자각합니다. 수행자는 줄어들고 문화·관광에 방점이 찍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범어사만큼은 본연의 수행도량으로 가꾸어야 하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체득하는 공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지 임명 당시 노출된 범어사 내부 갈등은 조정이 잘 되었습니까.
“갈등을 해소해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갈등 원인은 범어사에 대한 애정 표현 방법이 달랐다는 데 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범어사에 대한 애정이 있는 이상 또 다른 갈등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갈등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그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 가느냐 하는 것이 화두가 아닌가 합니다. 종단에 대한 애정,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애정이 동전의 양면처럼 생각의 차이를 빚어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갈등이 아예 없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양보와 이해를 통해 갈등을 해소해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일이겠지요.”
보운 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감사국장과 호법국장, 김해 백룡암 주지, 부산 금용암 주지, 범어사 총무국장, 부산불교연합회 사무총장, 제17대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다. 대중에게 스스로를 소개해달라는 청에 “저는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며 “20여 년 선방을 다녔다는 것, 열심히 했다는 기억이 저의 재산이라면 큰 재산일 것”이라고 운을 뗐다. 2000년 불국사 선원에서 수행할 때다. 급성폐렴에 걸린 줄도 모르고 오한과 기침의 고통 속에서 피를 토하면서 용맹정진을 마쳤는데 당시 선방 대중들이 그걸 또 참아줬던 게 너무 감사했다는 것이다. 당시 수행을 마치고는 병원에 곧바로 입원했다고 한다.
“제가 ‘철’을 난 해인사, 정혜사, 불국사, 법주사, 봉암사, 통도사 보광선원과 극락암 등등은 저마다 특징을 갖춘 수행처입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첫 철을 난 1993년 범어사 원효암이에요. 방장 지유 스님이 당시 조실이셨는데 제일 힘들었고 가장 좋았습니다.”
용성 성월 동산 스님으로 이어지는 범어문중은 범어사 해인사 쌍계사 화엄사 등을 아우르는, 한국불교에서 가장 큰 문중이다. ‘갈라치는 세태’에 대한 경계의 말을 청하자 보운 스님은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는 통합 화합을 일깨운다”며 “역지사지”를 강조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