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산복도로 계단 보행 불편,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원도심 등 여러 지자체 공통 문제
시, 원형 보존·이동권 보장 앞장을
산복도로는 부산의 상징과도 같다. 산복도로는 한국전쟁과 1960∼19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부산으로 유입된 대규모의 외지인들에 의해 난개발된 산동네를 연결하기 위해 생겨났다. 산복도로가 부산만큼 많은 도시는 세상에 없다. 부산에 산복도로가 있어서 산업화 초기 도시의 모습을 유지시켜 주고 있다. 덕분에 산복도로는 최근 영화나 드라마의 배경으로도 자주 등장해 관광상품으로서의 가능성도 확인되고 있다. 하지만 부산에 흔한 산복도로의 좁고 가파른 계단길은 청년조차 너무 걷기 힘들고 위험하다. 산복도로 인근에는 고령자가 많이 사는데, 이들 주민을 고생시켜 온 게 사실이다. 산복도로 계단 보행의 불편이 내 일이 아니라고 너무 오래 방치한 것이 아닌가.
대표적으로 부산 동구 도시철도 1호선 좌천역에서 멀지 않은 증산로에는 보기만 해도 까마득하게 높은 계단이 있다. 이름하여 ‘146개 계단’이다. 아찔할 정도로 개수가 많은 데다 계단 너비까지 30cm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좁다. 노약자가 자칫 발을 헛디뎠다간 큰 사고로 이어지기에 십상이다. 23일 자 〈부산일보〉 1면에는 비 오는 날 중년의 남성이 한 손에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로는 노모를 부축하며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사진이 실려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산복도로 르네상스’니 도시 재생이니 하면서 쏟아부은 예산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지난 수십 년간 위태로운 길을 오르내리느라 고생한 주민들의 기본 권리인 이동권을 이제는 보장해 줘야 한다.
걷기 힘든 계단은 산복도로를 품은 원도심을 비롯한 여러 지자체의 공통 문제지만 그동안 지자체들이 제대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동구만 해도 산복도로 곳곳에 ‘146개 계단’처럼 불편하고 위태로운 길이 퍼져 있어도 제대로 된 현황 파악이 안 된 상태다. 서구청이 지난해 9월 관내 계단을 전수 조사한 결과 1800여 개의 계단 도로와 골목길이 정비가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대부분 계단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보행이 어려울 정도로 간격이 큰 경우였다니 개선이 시급하다. 부산 중구, 동구, 영도구 등도 전수 조사하면 실상은 비슷할 것이다.
계단 정비는 주민 만족도가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난다니 이런 사업부터 예산을 투입해야 마땅하다. 다만 기초자치단체가 섣불리 맡아서 하면 길의 역사성이나 문화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걷기 편하게 고치는 방향으로 진행될 우려가 있다. 그동안 잘 유지된 산복도로의 원형을 지키면서 동시에 지역 내 이동권을 보장하는 식으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필요가 있다. 산재한 산복도로 계단 보행 불편 문제 해결은 부산시가 나서서 종합계획을 세우고 각 구가 참여하는 방식이 좋겠다. 경사형 엘리베이터 확대 도입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주민과 활동가로부터 듣고 머리를 맞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