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앱 4개 켜도 저가콜만”… ‘저임금 늪’ 빠진 대리기사
부울경 기사 커뮤니티 실태조사
응답자 70% “저가콜에 소득 줄어”
플랫폼 업체, 단독배정권 등 미끼
기사 간 경쟁 심화 속 저단가 조장
“표준요금 도입 등 제도 개선을”
부산·울산·경남지역 대리운전기사들이 플랫폼 업체의 저가콜 시스템으로 인해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대리운전기사들이 최소한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표준 요금 도입 등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울경 대리운전기사 5800여 명으로 구성된 커뮤니티 카부기상호공제회가 부울경 대리기사 531명을 대상으로 저가콜 실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19명 중 498명(96%)가 지난해에 비해 소득이 감소했다고 23일 밝혔다.
노동시간 대비 소득이 30% 이상 감소했다는 응답자가 70%가 넘는 376명으로 가장 높게 나왔다. 소득 감소에 미치는 영향 중 가장 큰 요인으로 저가콜로 인한 대리요금 단가 인하가 70.2%(370명)로 가장 주된 원인으로 꼽혔고 다음으로 고객 감소, 기사 증가 순이었다. 소득 감소분을 채우기 위해 노동시간이 늘었다고 답한 응답자는 457명으로 가장 많았다.
대리운전기사들은 플랫폼 기업들의 대리운전 시장 진입 이후 저가콜 압박이 심해졌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되던 지난해 상반기부터 전화 콜이 많은 대리운전 시장에 플랫폼 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이 늘었다고 대리기사들은 설명한다. 경기 침체로 해고되거나 자영업에 실패한 사람들의 대리운전 시장 유입이 늘면서 기사 수는 많아져 경쟁이 심해졌다. 플랫폼 업체들은 이런 상황을 이용해 저가콜을 늘려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 점유율이 이윤과 직결되기 때문에 플랫폼 기업들은 경쟁사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콜을 점유하려 하기 때문이다.
저가콜이 늘면서 대리운전기사들을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경쟁에 내몰린다고 호소한다. 부산의 경우 서면이나 해운대 등 특정 지역 목금토 피크타임(10시~12시)에만 반짝 수요가 있을 뿐 이외 시간은 수요가 적어 기사들이 저가콜을 받는 경우가 많아진다. 플랫폼 업체는 저가콜을 많이 수행하는 기사들에게 높은 점수를 부여해 단독배정권을 주는 등 기사들의 저가콜 수행을 유도한다. 콜 단가는 내려가게 되고 시간 대비 수입은 감소한다. 설상가상으로 플랫폼 업체의 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지역 콜 업체도 건당 수수료에서 플랫폼 업체와 비슷한 수준으로 수수료를 20%까지 올렸다. 사실상 노동시간은 늘고 최저임금도 못 버는 날이 빈번하다고 기사들은 주장한다.
부산에서 대리운전기사로 10년째 일하고 있는 60대 김 모 씨는 “양질의 콜을 받기 위해 대리기사 앱 4개를 항상 켜 놓지만 피크타임을 제외하고 대부분 저가콜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저가콜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며 “몇 년 전만 해도 10시간 일을 하면 10만 원을 벌 수 있었지만, 요즘은 평일 일당 5만 원 정도 번다. 노동시간은 늘고 수입은 오히려 감소하는 악순환의 반복”이라고 말했다.
대리운전기사들이 최소한의 노동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카부기상호공제회 김철곤 사무국장은 “저가콜이 늘어나면 향후 콜 단가는 점점 내려가고 수수료나 부대비용 등은 여전히 기사들이 감당하게 된다. 플랫폼 업체들 배만 불리고 대리기사들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라며 “대리운전 표준요금 도입 등 기본요금 최저선 상향과 플랫폼 노동자에게도 최저임금 적용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고객들이 이를 납득할 수 있도록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도 함께 수반돼야 한다”고 말했다.
나웅기 기자 wonggy@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