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품으로 돌아온 ‘담장 너머 그 집’…부산·경남 관사 여행
경남도지사 공관 이어 관사도 개방 완료
단순한 시민 휴식·산책 공간 뛰어 넘어
공연·전시·체험 등 복합문화공간 탈바꿈
부산시장 관사는 내년 초 내부 공간 개방
단체장 사적 공간, 시민 모두의 공간으로
지난해 말 방영된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의 주요 촬영지가 옛 부산시장 관사인 ‘열린행사장’으로 알려지면서, 옛 부산시장 관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부산시장 관사는 현재 야외 공간만 시민들에게 개방돼 있다. 전국의 숱한 관사들이 민선 단체장 시대를 맞아 권위주의 시대의 유물, 잔재라는 지적 속에 문화 공간, 어린이 도서관, 역사자료관, 어린이집 등으로 시민 품으로 돌아갔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부산시도 본관 건물의 리모델링을 거쳐 옛 부산시장 관사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완전 개방하겠다고 밝혀 기대감이 크다. 경남도는 앞서 도지사 공관을 개방한 데 이어 지난해 9월 관사까지 개방하며 시민 환원 작업을 마무리했다.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경남도지사 관사와 변신을 준비하는 부산시장 관사를 찾아 떠났다.
■경남도지사 관사, 복합문화공간 변신 성공
경남도지사 공관이었던 ‘경남도민의집’과 지난해 9월 개방된 경남도지사 관사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와 카페·맛집으로 유명한 창원 용호동 가로수길의 중심부에 있다. 경남도민의집에는 입구 앞쪽에 주차 공간이 있지만 주차 면수가 많지는 않다. 자가용을 이용해 방문하려면 인근 용지어울림동산 주차장, 용지동 행정복지센터 주차장, 용남초등학교 옆 공영주차장 등을 이용하면 된다.
1983년 7월 경남도청이 부산에서 경남 창원으로 신축 이전하면서 이듬해 4월부터 경남도지사가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했다. 접견, 회의 주재 등 도지사의 집무실로 사용됐던 공관은 2009년 ‘경남도민의집’으로 개방됐다. 경남도민의집 본관 건물은 경남도의 과거와 현재를 알리는 도정 역사실·도정 홍보실 등으로 쓰이다, 최근에는 추가 개방된 도지사 관사와 함께 각종 공연·전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경남도민의집 입구에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왼쪽엔 정원과 산책로가 있고, 오른쪽엔 2층 건물인 경남도민의집 본관이 자리한다. 정원엔 역대 도지사들의 기념식수들이 있다. 본관 입구 현수막은 오는 7월 2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2시 본관 앞뜰에서 ‘관사 음악회’가 열린다고 안내한다. 본관 로비 작은 탁자 위에는 ‘듣고 싶은 곡을 적어 주세요’라고 적힌 노트가 올려져 있고, 노트엔 방문객들의 신청곡들이 적혀 있다. 이달 말까지 매주 수요일 오후 7~8시 작은 음악회가 진행 중이다.
본관 로비와 앞뜰이 음악으로 물들고 있다면, 내부는 미술 작품들로 채워졌다. 경남도는 도지사 관사를 개방한 뒤 약 5만 명이 방문했다며 이를 기념해 ‘경남도 소장 미술품 특별전-고향의 봄’을 이달 말까지 진행 중이다. 경남도민의집 본관과 경남도지사 관사 내부에는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작품들과 미공개 작품, 아마추어 작가 입상 작품이 전시돼 있다. 1960년대부터 지난해 작품까지 서양화, 동양화, 서예, 사진 등 86점이다. 연회장이었던 본관 1층 환주당에는 특별전의 주제 작품인 김창락 작가의 ‘고향의 봄’을 비롯해 저명 작가의 작품들(9개)이 전시돼 있다.
홍미옥 전시해설사는 “작품 ‘고향의 봄’은 홍난파가 작곡하고, 이원수 작가가 가사를 쓴 국민 동요 ‘고향의 봄’의 노랫말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으로, 1985년 경남도청을 건립한 금강개발이 경남도에 기증한 작품”이라며 “경남도지사 공관에 걸려 있다가 2013년부터 경남도립미술관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본관 1층 도지사 집무실과 회의실에는 역대 도지사들이 사용했던 책상·의자 등 집기들이 그대로 남아 있고, 벽면엔 특별전 미술 작품들이 걸려 있다. 집무실에는 도지사가 사용했던 의자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포토존이 마련돼 있다. 1·2층 집무실과 회의실, 접견실을 잇는 복도 벽면과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 계단의 한쪽 벽면에도 미술 작품들이 가득하다.
경남도민의집 본관을 나서 비탈진 산책로를 따라 내려가면 청량한 대나무 숲과 대나무를 겹겹이 이어 붙인 대나무 쪽문에 다다른다. 쪽문 안쪽에 도지사가 거주했던 관사가 있다. 관사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일반 가정집에 온 느낌이다. 도지사가 머물렀을 당시의 가구와 집기가 그대로 남아 있고, 곳곳에 미술 작품이 전시돼 있다.
경남도민의집 본관과 도지사 관사는 다양한 전시회와 공연, 교육 프로그램으로 끊임없이 채워지는 중이다. 토·일요일에는 프리마켓이 열린다. 오는 7월 8일까지 매주 토요일 ‘주말 예술 소풍’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예술 체험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단순히 휴식과 산책을 위한 공간에 머물지 않고, 문화와 예술의 향기가 가득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경남도민의집과 도지사 관사 개방 시간은 실내는 오전 9시~오후 8시, 야외는 오전 9시~오후 9시다. 월요일은 쉰다. 공연·전시, 교육 프로그램 일정을 미리 확인하고 방문한다면 더욱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다.
■부산시장 관사, 내년 초 완전한 시민 환원
부산 수영구 남천동에 있는 부산시장 관사는 현재 ‘열린행사장’이라는 이름으로 야외 공간만 개방돼 있다. 얼마 전 부산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 응답자 10명 중 5명이 관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 했고, 7명은 관사의 위치를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나이가 지긋한 시민 중에는 직접 가본 경험은 없더라도 ‘KBS 뒤쪽 전두환 별장’으로 알고 있는 이들이 꽤 있다.
열린행사장으로 가려면, 부산도시철도 2호선 남천역에서 내려 KBS부산방송총국 입구에서 옆으로 난 길을 따라 뒤쪽으로 조금만 걸어가면 된다. 열린행사장 방문자를 위한 별도의 주차 공간은 없다. 열린행사장 안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작은 주차 공간이 있는데, 도서관을 이용하는 경우에만 주차가 가능하다.
열린행사장 입구에 닿으면 하늘색 철문에 눈길이 머문다. 단절의 이미지가 강하고, 위엄이 느껴진다. 열린행사장은 관사 본관과 관리동, 산책로, 잔디정원, 전망덱, 쉼터, 연못 등으로 이뤄져 있다.
둘러보기 전, 열린행사장의 어제를 미리 알아보고 간다면 공간에 대한 이해가 쉽다. 열린행사장은 부산시장 관사로 쓰였던 곳이고, 그전에는 대통령 숙소였다. 1985년 전두환 전 대통령 지시로 대통령 별장 용도로 지어졌다. 20세기 우리나라 현대 건축을 대표한 고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했다. 입구의 하늘색 철문은 물론이고, 아직 남아 있는 주변의 높은 담장, 철책만 봐도 보안이 얼마나 철저하고 엄격했을지 짐작이 간다. 1988년부터 오거돈 전 부산시장이 2020년 5월 사퇴하기 전까지 역대 시장들이 거주했다. 이후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형준 현 시장이 시민 환원을 약속하며 빈집으로 남아 있다. 전국 시·도지사 관사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수목과 초본 식물 수만 본이 잘 관리되고 있어 조경도 뛰어나다.
열린행사장 입구로 들어서면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가면 어린이 도서관인 ‘숲속체험도서관’이 있고, 오른쪽은 본관 건물로 가는 오르막 산책로다. 2~3분 정도만 걸어가면 빨간 벽돌로 된 2층짜리 본관 건물이 나온다. 본관 앞으로는 널찍한 잔디정원이 펼쳐져 있다. 돗자리 사용과 음식물 섭취는 금지돼 있다. 잔디정원의 가장자리로는 역대 부산시장들의 기념식수들이 자라고 있다. 잔디정원 양쪽 끝에는 전망덱과 연못이 있다. 하얀 탁자와 의자가 놓여 있는 전망덱에 올라서면, 해운대 일대 마천루들과 광안대교 일부가 눈에 들어온다. 지대가 높은 편이 아니어서 시야가 시원한 편은 아니다. 연못은 돌담과 수수한 조경으로 운치가 있다.
부산시는 내년 초 본관 내부도 시민들에게 개방한다. 열린행사장이 다양한 전시·공연과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채워지며 부산을 대표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열린행사장 야외 공간은 동절기(11~5월) 오전 9시~오후 5시, 하절기(6~10월) 오전 9시~오후 6시 개방한다. 평일만 개방하고 토·일요일, 공휴일엔 문을 닫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