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중국과 엑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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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 공모 칼럼니스트

중국 훼방 부산엑스포 걸림돌로 작용
중남미·아프리카 득표전 차질 우려
윤 대통령 한·미·일 우선 전략 영향

자국 이익 우선 냉정한 국제무대 현실
대한민국 위상에 걸맞는 역할 부족
엑스포 유치전 국제 신뢰 쌓는 기회로

얼마 전 뉴스를 보다가 가슴이 철렁했다. 중국이 뒤에서 우리나라의 2030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를 방해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최근 정부 고위 당국자가 한 중남미 국가 측으로부터 “한국의 엑스포 유치를 지지하기 어렵게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그 나라는 경쟁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지지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경제 의존도가 큰 제3국의 설득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취지로 의사를 전달했다. 우리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그 ‘제3국’은 중국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포함한 여러 쟁쟁한 국가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이런 소식이 들려오니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정부 관계자의 전언대로 중국의 방해가 사실이라면 엑스포를 유치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난관에 맞닥뜨린 셈이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중남미, 아프리카 등지에서 중국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을 보았을 때 더더욱 그렇다.

중국은 2013년 일대일로 정책을 시작하며 대대적인 확장을 꾀했다. 개발도상국·저개발국 등에 자본을 빌려주고 자국 회사와 노동자들이 진출하여 고속도로, 항만 등 인프라 시설을 구축해 주는 게 핵심이다. 새로운 실크로드를 건설하겠다는 중국의 꿈은 현실이 되고 있다. 이미 미국 뒷마당인 중남미에서 최대 교역국의 지위를 굳혔고, 아프리카에서도 대만과 수교한 에스와티니(옛 스와질란드)를 제외한 모든 나라들(53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이츠코위츠가족재단이 지난해 공개한 ‘2022년 아프리카 청년세대 조사’에 따르면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영향력과 긍정 평가 등에서 모두 미국을 제친 것으로 나타났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취임 후 중국의 왕이 외교부장과 만난 자리에서 “상호 존중에 기반해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협력적 한·중 관계를 만들자”며 ‘화이부동(和而不同·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는 아니함)’을 강조했다. 동의한다. 중국에 굴종해선 안 되지만 그렇다고 굳이 적으로 만들 필요도 없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한·미·일 삼각동맹을 굳건히 하기 위해선 중국에 선을 확실히 그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다. 중국의 반발을 산 대만해협 관련 발언이나, 종래의 ‘한·중·일’ 표기를 굳이 바꿔서 만든 ‘한·일·중’이라는 표현을 보면 말이다. 단편적 세계관은 중국의 엑스포 방해라는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고 있다.

한·미·일 동맹 강화의 필요성은 전적으로 공감한다. 하지만 우리가 없어도 될 적을 만들어 가며 미·일 등과 의리를 지킬 때, 그들이 그만큼의 신의를 지키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포드가 미국 미시간주 마셜에 중국 배터리업체 CATL과 손잡고 배터리 공장을 짓는 사실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중국과 손잡지 말라며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가지고 동맹국을 위협하던 미국이 아니었나.

김영삼 전 대통령은 민정당 대변인이던 1964년 미국 국무부의 초청으로 미국을 비롯한 자유세계 13개국을 방문했다. 냉전이 지배하던 시대였지만 그가 직접 본 세상은 전혀 달랐다.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미국 주도 질서에 반발하며 중국과 수교를 맺었고, 소련의 흐루쇼프 공산당 서기장은 공산권 파트너인 동독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독과 접점을 넓히려 하고 있었다. 실리 때문이었다. 치사하고도 냉정한 국제사회의 현실을 본 김영삼은 결국 진영이나 이념이 아니라 실력만이 대한민국을 부강하게 만들 수 있다며 “우리가 기댈 언덕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2030부산엑스포 유치 여부는 우리의 외교 실력을 보여 주는 계기가 될 것 같다. 어쩌면 이걸 준비하는 과정 자체가 국제 무대에서 우리의 위상을 드높일 기회일지도 모른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며칠 전 튀니지·나미비아·보츠와나 등 아프리카 3개국을 순방한 후 “대한민국은 약속을 잘 지키는 나라, 고기 잡는 법을 찾아내고 실천하는 파트너라는 것을 확인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했다.

재작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로부터 선진국 지위를 부여받은 우리나라는 응당 그래야 하는 나라다. 하지만 우리가 그에 걸맞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가는 의문이다. 작년 우리나라의 GNI 대비 공적개발원조(ODA) 비율은 0.17%. 독일(0.83%)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고 일본(0.39%)과 비교해도 절반에 불과하다. 결혼할 때만 청첩장 주겠다고 연락하는 친구는 반갑지 않은 법. 이번 기회에 단순히 엑스포 유치 운동만 할 게 아니라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를 높이며 다른 나라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갔으면 좋겠다. 누군가의 동맹이 아니라 대한민국 그 자체로서. 그렇게 하나둘 접점을 넓혀 나간다면 ‘제3국’이 뒤에서 아무리 우리 뒷담화를 하더라도 안 먹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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