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디리스킹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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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선언이 발표됐다. 선언은 중국과의 관계도 언급했는데, 요약하자면, G7은 중국을 견제하는 입장이지만 ‘디리스킹(de-risking)’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디리스킹’은 적대적이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위험 요소를 점차 줄이는 것이다.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반도체 등 공급망 확보를 위해 중국을 대상으로 ‘디커플링(decoupling)’을 고집하며 G7의 다른 회원국에도 강요해 왔다. ‘디커플링’은 단절 또는 배제를 뜻한다. 중국과는 연을 끊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정상회의에서 미국 포함 G7이 ‘디커플링’이 아니라 ‘디리스킹’을 선언했다. 상당히 유화적인 태도로, 협력할 것은 협력하겠다는 말이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중국을 적대시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유럽은 그동안 불만이 많았다. 그래서 폰 데어 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지난달 “중국과 단절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유럽에 이롭지도 않다”며 ‘디리스킹’을 언급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한발 더 나갔다. 그는 지난달 중국을 방문하며 “미국의 장단에 맞추지 않겠다. 동맹이라고 해도 속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버티던 미국도 ‘디리스킹’을 수긍했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과 경쟁하지만 대결이나 갈등을 바라지 않는다”며 지난 11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왕이 중국 국무위원과 장시간 회동을 가졌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번 G7 정상회의를 마친 뒤 중국과의 ‘디리스킹’ 의사를 밝혔다.

다들 속내가 따로 있다. 지난해 미·중 간 교역 규모가 사상 최대치에 달하는 등 미국의 중국 의존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EU도 전체 수출의 7%, 수입의 20%를 중국에 의존한다. 이런 형편에 중국과의 전면적 단절은 자국의 이익에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결국 부담되는 ‘디커플링’ 대신 ‘디리스킹’을 전략적 대안으로 선택한 것이다.

한국만 답답하게 됐다. 23일 중국이 마침내 칼을 빼들었다. 미국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생산하는 제품의 중국 내 판매를 금지했다. 삼성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겐 다시없을 호기다. 그런데 미국은 자국 기업이 중국에 못 파는 제품을 한국 기업이 대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자기들은 하지 않겠다면서 한국에는 중국과의 ‘디커플링’을 강요하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한·미 동맹에 모든 것을 걸었다. 한편으로 대중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무역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형편이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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