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빗장 연 산사와 금정산의 품격
논설실장
불기 2567년 부처님오신날 앞두고
전국 사찰 65곳, 문화재관람료 폐지
불교와 시민의 마음속 벽 사라져
TK불교의 팔공산, 국립공원 승격
다음은 PK불교 중심 금정산 차례
범어사와 부산시, 상생의 길 찾아야
27일 부처님오신날을 다시 맞이한다. 불기 2567년이다. ‘뭇 생명이 모두 존귀하다’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을 외치며 태어난 부처님은 마지막 가르침으로 ‘자기 자신과 법을 등불로 삼아라’는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을 제자들에게 남기고 떠났다. 해마다 돌아오는 부처님오신날의 의미를 스스로와 중생을 비추는 등 하나 환히 밝히라는 뜻으로 해석해도 무방한 생애였다 하겠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비추는 등불이 더 환해진 것은 그 지긋지긋하고 무시무시한 코로나19 팬데믹에서 비로소 놓여난 데 따른 것만은 아니다. 산사를 가로지른 빗장을 풀어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산문을 활짝 연 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1962년 문화재보호법 제정에 따라 거두기 시작한 절집의 문화재관람료가 61년 만에 5월 4일부터 면제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산사와 일반인 사이를 가로막던 완강한 담장 하나가 마침내 허물어진 것이다.
조계종 종정 성파 큰스님이 주석 중인 경남 양산의 불보사찰 통도사를 비롯하여 〈삼국유사〉에 ‘절과 절은 뭇별처럼 늘어서 맞닿아 있고, 탑과 탑은 기러기처럼 날아갈 듯 솟아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는 경주의 불국사, 석굴암, 분황사, 기림사도 입장료 부담 없이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됐다. 국가지정문화재를 보유한 전국 65개 사찰이 무료입장으로 돌아서게 된 것은 관람료를 감면하면 그 비용을 정부나 지자체가 지원할 수 있도록 법이 바뀌면서다.
문화재관람료 면제 이후 찾은 경주는 축제 분위기가 완연했다. 천마총을 비롯하여 고분 23기가 모인 대릉원의 입장료도 때맞춰 없어졌다. 고분 야경을 뽐낼 ‘대릉원 미디어 아트’가 개막 중인 데다 인근 경주박물관에서는 천마총 발굴 50주년을 기념하는 ‘천마, 다시 만나다’ 특별전시까지 마련돼 신라의 황금시대를 웅변한다. 대릉원 인근 황리단길은 젊은이와 외국인으로 북적여 경주 관광의 중심으로 우뚝 선 지 오래다.
‘핫’하기는 통도사도 마찬가지다. 적멸보궁 참배 불자와 영남알프스를 찾는 산꾼들로 늘 문전성시를 이루는 통도사는 평산책방까지 가세해 이래저래 핫플로 떠올랐다. 통도사 정문에서는 ‘이런 날도 오네’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무료입장이 새삼스러웠고, 후문 쪽으로 가면 ‘평산책방 가는 길’이라는 낯선 이정표가 등장해 눈길을 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 지나 지산마을 쪽 통도사 후문도 활짝 열려 있어 생경하기는 마찬가지다.
부산의 절집 사정은 어떤가. 이번에 문화재관람료를 면제하는 65개 사찰 가운데 부산에서는 범어사가 유일하게 해당한다. 하지만 범어사는 이미 2008년부터 부산시와 협의해 문화재관람료를 폐지했다. 부산시 지원금의 적정성을 둘러싸고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부산시민을 위해 대승적인 합의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불교도시 부산’다운 면목이라 하겠다.
입장료 문턱을 일찌감치 없앤 조계종 제14교구 본사인 선찰대본산 금정총림 범어사이지만 문호 개방과 관련하여 지역사회의 묵은 염원을 떠안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금정산 국립공원화가 바로 그것이다. 금정산 국립공원 추진이 늦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전체 면적의 82%를 차지하는 사유지 관련 협의가 지지부진한 탓이다. 사유지 중에서도 범어사가 가장 큰 지분을 차지하는데, ‘국립공원 금정총림’이라는 위의를 갖출 상생의 논의가 필요하다.
마침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대구 동화사와 제10교구 본사인 경북 은해사가 터 잡은 TK불교의 중심 팔공산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지난 23일 마침내 23번째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 금정산보다 2년 늦게 국립공원화 추진에 나섰지만 결실은 먼저 본 셈이다. 팔공산도 사유지 비율이 52.9%에 달하는 등 난관이 많았지만 60차례에 걸친 간담회와 공청회를 통해 반대대책위원회를 상생발전위원회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국립공원화는 가장 불교적인 정책이랄 수 있다. 국가가 모든 비용을 들여 산에 사는 뭇 생명을 책임지고 보존하도록 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TK언론은 경주~주왕산~팔공산을 잇는 국립공원 3축으로 관광 그랜드플랜을 짜자며 ‘팔공산국립공원 만세’라는 제목의 사설을 싣는 것도 주저하지 않고 있다. 소중한 자연은 자연대로 지자체의 돈 한 푼 안 들이고 지키면서 침체한 지역경제를 살리는 활로가 거기에 있는 까닭이다.
부산과 경남 양산에 걸쳐 있는 PK불교의 중심 금정산도 팔공산에 이어 국립공원화에 속도를 낼 일이다. 범어사와 부산시가 전국에서 가장 먼저 문화재관람료를 없애 산사의 문을 활짝 열었듯 금정산 국립공원도 머리를 맞대면 상생의 길을 반드시 찾을 수 있다. 금정산이 저마다의 생명이 모두 존귀한 대접을 받으며 스스로의 빛을 환하게 발할 수 있도록 하루빨리 국립공원화가 추진되길 기원한다.
임성원 기자 fores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