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 편집국] N개의 꿈이 있는 우리, 이번 생은 망하지 않는다
[MZ 편집국] 부산 청년 N잡러들
생계 이외 목적 둘 이상 직업 병행
진짜 재능·적성 찾는 자기만족형
다채로운 경험 추구 보헤미안형
자아실현 위해 도전 지향 공통점
미래 가능성 열고 끊임없이 공부
본업과 부업 무게중심 바뀌기도
부산 청년들이 의지와는 관계없이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고 있다. 이들이 바라는 건 ‘좋은 일자리’까지도 아니고 단순히 ‘적당한 일자리’이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까닭이다.
이 같은 악조건 속에서도 자기만족, 자유, 꿈 등 각각의 이유로 안정적인 직업 대신 미래를 찾아 여러 직업을 가진 부산 MZ ‘N잡러’도 있다. 이른바 현생(온라인이 아닌 실제 삶) 속 부캐(부캐릭터·제2의 자신) 생활을 하는 이들을 〈부산일보〉가 만나봤다.
■“한 직업은 부족해” 자기만족형
그릭하다 장영민(27) 대표는 전국에 그릭요거트 매장 40개를 보유한 어엿한 프랜차이즈 CEO다. 하지만 〈부산일보〉가 지난 24일 인터뷰를 위해 찾아간 곳은 명패가 놓인 사무실이 아니라 페인트와 도장 도구가 가득한 공사 현장이었다. 장 대표는 그릭하다와 인테리어 도장업체 외에도 커피 프랜차이즈, 자영업 컨설팅, 제조업, 요식업, 강연 등 분야의 명함 6개를 가진 ‘프로 N잡러’다. ‘여러 직업을 가져 어려운 점은 없나’라는 질문에 그의 답은 명확했다. 장 대표는 “요즘은 1개의 직업과 1개의 특징, 장점으로는 일정 기준치의 만족감을 넘을 순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성공한 MZ 사업가이지만 장 대표의 도전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사람마다 ‘달란트’(재능)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손재주가, 누군가는 운동신경이 뛰어난 것 등이다”라면서 “한 직업에만 안주할 경우 능력을 현실적으로 발현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산의 청년들을 향해 “부업과 부캐를 통해서 자신도 몰랐던 또 다른 재능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강조했다.
부산의 한 명품관에서 만난 김범준(34) 세일즈 어시스턴트도 장 대표 못지않게 열정 가득한 N잡러다.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단정한 정장 차림에 손에는 흰 장갑을 끼고 진열된 상품을 정돈하는 중이었다. 불과 1시간 뒤 서면에 위치한 다이닝바 레이어스튜디오클럽에서 다시 마주쳤을 때는 청바지와 청재킷을 입고 손님이 주문한 음료를 제조하느라 분주했다. 오전에 출근해 오후까지 백화점 명품관에서 근무한 뒤 저녁부터 새벽까지는 다이닝바 점장으로 활동하는 그는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이 3~4시간에 불과하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피로한 표정을 찾아볼 수 없었다.
김 씨는 항공·선박 승무원이었지만 갑작스러운 ‘일본 불매운동’으로 항공 노선이 줄어 평생 직장을 그만둬야 했다. 한순간에 안정된 직장을 잃은 그는 평소 무슨 일을 하고 싶어 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노력 덕분에 지금은 어느덧 두 가지 직업을 가지게 됐다. 그는 “MZ세대는 끊임없는 탐구와 자기개발에 나선다”며 “무엇이든 행동하면 거기서 배울 점이 있다. 더 다양하게 도전했으면 한다”고 조언한다.
■꿈·자유 찾아 떠난 보헤미안형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김기량(29) 포토그래퍼는 졸업 후 쇼핑몰 회사에 취직했다. 대기업만큼은 아니지만 인생에서 첫 직장이었던 만큼 큰 기대를 품었다. 하지만 매일 반복되는 틀에 박힌 업무는 그를 갉아먹었다. 김 씨는 큰 마음을 먹고 인테리어 회사로 옮겼지만 상황은 같았다.
결국 그는 안정된 직장 대신 자유를 선택했다. 매일 오전 남구 대학칼라 스튜디오에서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 활동하고, 남는 시간에는 인테리어 소품 등 수공예 작품을 만들어 온라인 플랫폼에 판매하고 있다. 그것이 벌써 5년이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촬영 스튜디오에는 그를 찾는 손님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 씨의 스마트 스토어에는 작품에 관심을 보인 이가 4000명을 넘어선다. 김 씨는 “성향이 한가지 일에만 몰두하거나 반복된 패턴의 일을 힘들어 한다”면서 ‘여유 시간이 없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환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매우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타투이스트이자 나전, 난각 등을 활용한 전통 옻칠화를 만드는 추가비(30) 작가도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하지만 이미 제작된 재료를 짜맞추는 수준에 그치는 업무에 싫증을 느끼게 됐다. 그가 좋아하는 그림과 관련된 직업을 수없이 고민하던 중 타투이스트로의 전직을 선택했다. 이후 이미지를 형상화한다는 공통점을 가진 전통 옻칠화에도 자연스레 관심을 가지게 됐다. 타투이스트 활동을 시작으로 옻칠화까지 영역을 넓힌 그였지만 이제는 업무의 무게가 옻칠화로 넘어가 본업의 전환이 이뤄지고 있다.
한편,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주된 업무 외에 부업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은 54만 6000명으로 조사됐다. 1년 전인 2021년보다 4만 명(7.9%) 증가한 수치며, 2003년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래로 역대 최대다. 2030 청년층은 1년 전보다 11.3% 늘어 60세 이상(17.3%)에 이어 2번째로 증가율이 높았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김종진 기자 kjj1761@busan.com